새해가 다가온다고 설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 2월이 되었네요. 이곳 서울의 날씨는 한낮이면 겨울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따뜻하고 날씨에 맞게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합니다.
이곳에 사는 탈북 여성들도 정착 초기랑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언행도 달라지고 피부 결도 달라지고 사는 곳도 바뀌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 걱정은 늘어만 갑니다. 오늘은 시영이의 고등중학교 단짝인 훈이의 생일입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생일이면 늘 저의 어머니가 친구의 생일상을 차려주셨고 누나랑 함께 저의 집에서 온종일 놀던 친구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젠 장가도 가서 든든한 가장이 되었겠지요? 언젠가 만나게 될 친구의 얼굴을 잊지 않게 사진 한장이라도 받아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시영이는 친구를 챙겨주지 못하지만 가끔 탈북민들을 돌봐주는 봉사활동에 참가한답니다. 북한에서는 나라를 위해, 조직을 위해 동무를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은 조직의 결정에 따라 지시에 복종해야 하지만 이곳에선 돈을 주지 않고는 누구도 공짜로 부릴 수 없습니다.
다만, 봉사활동은 누구의 강요나 요구가 아니라 본인의 마음에 따라 참여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이 부담 없이 가능한 시간과 날짜에 의사를 밝히고 참여하지요. 엊그제엔 탈북민이 많이 사는 서울 노원구 복지관에서 어르신과 함께 하는 노래 교실 봉사를 다녀왔는데요.
이동이 불편하신 탈북 어르신들을 모시고 노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도와드렸고 또 한번 탈북여성들이 누리는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그날 평안남도 회창군에서 오신 어르신의 나이는 80세가 넘으셨고 북한을 떠나신 지는 20년도 넘으셨고, 떠나실 때 6개월 시한부로 진단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드님이 남쪽이 고향인 어머니를 사망하시기 전에 형제를 만나게 해준다고 업고 떠났는데요. 세개 나라를 거치는 탈북과정을 잘 견뎌내시고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인공심장 수술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물론 돈이 없으면 병원 문 앞에서 죽어야 한다는 북한의 선전과 달리 한푼의 돈도 내지 않고 수술을 받고 회복 기간까지 거치고 현재까지 정기적인 검진을 받으시면서 인공심장으로 계단도 척척 올라가십니다.
인공심장으로 사시는 80세 어르신이 노래도 너무 잘 부르시고 어깨춤도 추시는데 저분이 북한에 사셨으면 지금쯤 살아계셨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물론 하늘나라로 가시고도 남으셨겠죠. 그러다 보니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웠고 군 복무 중에 지병으로 치료를 잘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동생 생각도 나면서 눈물이 절로 흘렀습니다.
노래를 부르시던 할머니가 저의 손을 잡으면서 ‘탈북민을 처음 보니 가슴이 아파?’라고 물으셨어요. 제가 바로 저도 고향이 북한인 탈북민이라고 대답을 하니 할머니는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가끔 남한 아가씨들이 봉사를 오면 탈북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80이 넘으신 할머니는 그날 노래 교실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시고 복지관 차를 타고 아파트까지 가셨고 북한에서 온 시영이에게 커피 한잔 마시라고 권하셨네요. 당연히 어르신의 손에 이끌려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신 80세 어르신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이 세개, 거실 한개 화장실 하나, 주방이 있는 자그마한 아파트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겨울인데도 따뜻한 온기가 문밖으로 밀려 나왔습니다. 아궁이 없는 대한민국 아파트의 주방에는 전기밥솥과 전자레인지가 어느 집에 가도 있답니다.
건강에 좋은 음이온 생수를 드신다고 정수기가 두개 설치되어 있었고요. 80세 어르신이 혼자 사시는 집에는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김치냉장고, 흡진기, 발 마사지기, 가습기, 제습기, 컴퓨터까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북한에서 인기 최고인 커피믹스를 한잔 타주셨는데 식탁 위에는 커피믹스 블랙커피, 율무차, 옥수수 차, 보리차. 홍차 바나나가 있었고 냉장고에는 사과, 귤, 우유, 오렌지 주스, 토마토 주스가 있었습니다.
뭐를 마시겠냐고 할머니가 물어서 커피 한잔 주시면 된다고 했더니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는 커피믹스를 주셨는데 식탁 위에 그리 많은 메뉴가 있는 줄 알았으면 블랙커피로 주문을 했을 걸라는 생각도 했답니다.
80세 어르신이 타주시는 커피를 마시는 시영이를 청취자님들은 나무람하시겠지만 정전되지 않는 이곳 대한민국에는 정수기에서 온종일 더운물, 찬물, 얼음이 나와 컵에 커피를 쏟고 정수기의 버튼만 누르면 끓는 물이 내려와 커피를 마실 수 있답니다.
할머니는 북한에서 온 아가씨가 봉사도 다니고 참 마음이 뿌듯하시다 하면서 아들과 함께 탈북할 때 당시의 공포를 추억하셨답니다. 남한에 와서 오빠도 만나고 조카도 만났다고 하면서 오빠가 미국군에서 통역하신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아들이나 남편에게 죄인이었다고 남편은 처남 때문에 당원도 되지 못했는데 탈북할 당시 남겠다고 하여 두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6개월을 살면 오래 산다던 본인은 80이 넘었는데 정정하던 남편은 세상을 잘못 만난 덕에 벌써 하늘나라에 갔다면서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며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맺히셨답니다.
북한에 살 때는 고향에 한번 가보기라도 하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건강을 찾고 이리 오래 살다 보니 죽기 전에 통일이 된다면 평남도 회창에 가서 남편 묘소에 술 한잔 부어주면서 함께 탈북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해주고 싶다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고 웃으셨습니다.
저는 어르신의 손을 잡고 욕심이 아니라고 고향이 아니지만, 평남도 회창에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던 그분들을 그리는 마음이라고 꼭 어르신이 살아계실 때 통일이 될 거라고 힘내시고 병원치료도 꼬박꼬박 다니시라고 말씀드렸답니다.
어르신은 웃으면서 나보다 복지사님들이 병원 가는 날을 더 잘 안다고 그날이면 또 데리러 온다고 자랑하셨습니다. 언젠가 북한에 계신 어르신들도 노래 교실에서 노래를 부르시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