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편리한 배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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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짧은 치마에 스타킹을 신고 다니던 남조선 아가씨들도 요즘엔 두꺼운 롱패딩을 꺼내입습니다. 한겨울이라 서울 날씨도 은근 추워 시영이도 두꺼운 패딩에 쭉 펴진 어깨는 움츠려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추운 날씨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은 점심을 먹으러 주변 식당으로 오가는 5분 정도 길면 7분 입니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이곳에선 출근 시간에는 지하 주차장에서 퇴근 시간에도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차 안에는 온풍이 돌아 반소매를 입어도 될 정도이고 사무실 안도 역시 온풍기가 돌아 30도를 유지합니다.

남자분들이 대다수인 저의 사무실에서는 실내온도 26도를 설정해놓고 여자들은 무릎 옆에 전기 온열기를 켜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장작을 난로에 넣고 난방을 보장하지만 이곳 대한민국에는 천장에 냉난방 시설이 설치되어 버튼만 누르면 겨울에는 덥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옵니다.

전기절약을 하라고 밥솥도 사용 못 하고 전기 패드도 사용 못하던 시영이는 대한민국에서 전기 온열기를 마음 놓고 사용하는 것에도 감사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고 고난을 겪어봐야 일상의 감사함을 안다고 하지만 이곳에 정착하는 탈북여성들이 경험한 북한 실상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숨막히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어제는 날씨가 추워 식당에 내려가기 귀찮아서 사무실에서 배달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막내가 메뉴를 정하고 배달시켰답니다 혹시 청취자님들은 배달을 아시나요? 북한으로 설명하면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분에게 집까지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장사하시는 분이 직접 가져다주지만 이곳에서는 배달 업체가 따로 존재하거든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회사, 식당, 상점, 하물며 해외에 있는 회사 물건까지 주문하면 바로 배달 업체에서 일정이 수수료를 받고 물건을 집에까지 혹은 사무실까지 가져다준답니다.

북한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남자가 간부이고 돈 있는 사람이고 잘나가는 오빠라면 이곳에서 오토바이는 배달업체 기사님들이 타고 다니는 운송수단입니다. 이곳에는 간부와 노동자 즉 갑과 을이 존재하지 않지만 잘나가는 오빠는 멋진 자가용을 타고 다닙니다.

그날 우리 회사에는 오토바이를 타신 배달 기사님이 세분 오셨는데요. 처음 기사님은 점심 메뉴를 가져다주셨지요. 점심으로 저는 돈가스를 실장님은 초밥을, 국장님은 냉소바, 막내 직원은 육회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청취자님들은 듣고도 뭔 소리인가 하실 것 같아 제가 설명해 드리면요. 막내 직원이 그날 사무실 건물 건너편에 있는 일식 식당에 주문했고 그 식당에 있는 메뉴 중 한가지씩 골랐답니다.

돈가스는 돼지고기에 각종 소스를 넣고 다져 튀김옷을 입히고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고요. 초밥은 바닷물고기를 얇게 편으로 썰어 한잎 크기의 밥에 덮어 겨자 간장소스에 찍어 먹는 밥이고요. 냉소 바는 일본식 메밀국수인데요. 북한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은은하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맛입니다. 육회 비빔밥은요. 신선한 소고기를 잘게 썰어 소스에 무치고 밥 위에 얹어 비벼 먹는 소고기 비빔밥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소고기가 얼마나 신선하냐면 생으로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먹는 점심 한끼를 보면서도 저는 고향에서 굶주림에 고생하실 청취자님들을 떠올리고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 북한이 고향인 여성이랍니다. 삼시 세끼 맛있는 음식이 줄지어 있는 중에서 건강과 다이어트를 고려하여 골라 먹어야 하는 이 행복이 저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아 늘 고향에 미안하고 친구들에게 죄스럽습니다.

점심을 먹고 막내 직원이 한마디 했습니다. ‘오늘 커피는 제가 내겠습니다‘ 갑자기 이유를 물었더니 주식을 사놓았는데 가격이 올라 돈을 벌었다네요. 주식은 주식회사의 자본을 다루는 단위인데요. 쉽게 설명하면 회사가 상품의 가치와 미래를 담보로 증권을 판매하면 그 회사에 투자할 개인들이 본인의 의사로 돈을 넣어주고 그 돈을 회사는 책임지고 불리고 그러면 증권의 가치가 상승하는데 구매액과 판매액의 차이를 우리는 주식으로 번 돈이라고 한답니다.

청취자님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실 거예요. 저도 모르니까요! 북한에서는 개인들에게 이자를 주고 돈을 벌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데 주식도 그런 비슷한 거라 아시면 될 것 같고요. 통일되면 청취자님들이 배우셔야 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암튼 쉽게 말하자면 막내 직원이 돈을 투자하여 돈을 벌었는 겁니다. 그래서 기분 좋아서 커피를 사준다 이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여자를 꼬시기 위해 커피를 사는데 이곳에선 돈을 벌고 기분이 좋아도 직원들끼리 커피 한잔씩 나눌 수 있는 풍족한 세상입니다. 물론 커피도 내려가기 싫어서 배달시켰고요. 그날만 저의 사무실에 오토바이를 타신 배달 기사님이 세분이 오셨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3잔과 카페라떼 1잔 배달이 되었는데 우리 회사에는 얼죽아가 세명 있고 국장님은 따듯한 카페라테를 시키셨습니다. 얼죽아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줄여서 말한 것입니다.

한겨울에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차가운 커피를 마실 정도니 실내가 얼마나 따뜻한지 느낌이 오시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고 배달 기사님이 두분 오시고 한분은 서류를 전달한다고 거래처에서 보낸 기사님이었는데 그날 우리는 배달문화의 덕분에 편하게 앉아 밥도 먹고 서류도 받아보았습니다.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더 편리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곳과 달리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진다는 우리 고향의 이야기는 오늘도 시영이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언젠가 우리 고향에서 오토바이가 잘나가는 오빠의 상징이 아니라 배달 기사님과 함께 떠올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한부분이 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