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코로나 비루스19와 국제부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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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3월은 추위가 물러가고 봄빛이 물드는 화사한 달인데 사방에서 전해오는 우울한 소식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북한 매체는 평안남도에 2420여명, 강원도등지에 6900여명의‘의학적 감시 대상자’가 있다고 전하면서 의학적 감시 대상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정황상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자로 추정된다는데요,

: 북한은 중국과 밀접하게 연결 되어있고 외교관들도 나가 있고 외화벌이로 해서 나가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감염 확신자가 없으라고는 장담을 못합니다.

여성시대 자유와 인권을 위한 탈북민 연대 김태희 대표와 함께 합니다.

탈북민들도 나름대로의 소식통들의 얘기 그리고 여기저기 언론에서 코로나 비루스19 북한 기사를 접하고 있다는데요,

: 지금 몇천명이 격리 상태다, 그리고 북한은 언론 통제를 확실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은 것은 쉬쉬하고 전염병 바이러스 확진자 죽은 것은 쉬쉬한다는 기사를 보았거든요

김 대표는 이런 소식은 자신이 북한에 있을때 보다 휴대폰으로 인해 빠르게 전달 된다고 말합니다.

: 요즘에 휴대폰이 전국적으로 각 곳에 있기 때문에 저희들 있을 때 보다 3-4일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않을까 그래서 지금 수천명이 격리되어 있다고 해도 빠른 시일 날에 알 수 있는 조건은 다 구비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 당국이 중국과 북한 국경을 막아도 밀수는 절대로 막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 밀수 하는 사람들이 중국이나 일본과 밀접한 연관이 없으면 북한 시장경제가 지금 밑바닥 생활이 돌아갈 수 없어요 이 사람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밀수를 하는 과정에 우환 폐렴이 북한으로 넘어 갔다면 북한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추측하는 것하고 거의 맞아 떨어져요

또 탈북민들 보도에도 첫 번째 의심환자가 남성인데 국가반역죄로 총살했다 이런 여론까지 돌고 있는 점에 대해 역시 북한 당국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것이라고 말합니다.

: 저희는 기사를 보지 않아도 북한에서 살기가 그렇게 힘든데 병까지 걸려서 치료해주는 대신 총살을해 4:08 지금 삼중 사중고로 사람은 조이는 거지요

이번에는 주제를 바꾸어서 북한 여성들의 명절인 3월8일 국제 부녀절이라고 해서 북한에서도 여성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있다고 하죠.

: 여성들이 대우를 한다는 미명하에 생색 정도는 내죠 여성들이 여자가 꽃이라고 북한의 노래 있잖아요 꽃이라네 여성은꽃이라네, 세계적으로 볼때 여성의 날이 나온 이유가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하루만이라도 여성의 날을 지내자 그래서 나온 날인데 북한도 똑 같다는거죠

1908년 2월 28일, 미국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여성 노동자 1만 5000여 명이 모여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기리며 근로시간 단축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참정권 보장 등을 요구했는데 이날을 기리면서 각 나라에서 여성의날 행사가 열립니다. 김 대표는 북한에서의 국제부녀절 행사가 다른 것 보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하는군요

: 북한은 여성들이 가정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하루만이라도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축제라고 해야 되나요, 저같은 경우는 농장일을 했는데 그날은 사실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일하면서 모여가지고 음식도 해 먹고 노래방은 비록 없지만 무반주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이런 것도 했던 그때가 제가 북한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죠

국제 여성의 날 시작은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들의 지위 향상은 물론 여성들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요구 했던 날입니다. 지난 1908년의 110여년 전의 일 이었는데 북한은 여성의 지위나 인권은 어떤 상황인지 김 대표의 얘기 들어봅니다.

: 인권이라는 용어는 지금도 없고 여성의 권위가 조금 신장은 되었죠 북한이 시장경제로 돌아서면서 남성들은 조직생활을 해야 되고 결혼을 하면 여성은 부녀회만 출석하면 장사도 할 수 있고 행상도 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다 보니까 가정의 생계를 책임 지는 것이 여성이 되어 버렸어요 . 그러다보니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었다기 보다는 여성중심으로의 가정 생활이 되어 여성 우위권이 것입니다 . 예전에는 남성이 월급을 타거나 배급을 타다 주어서 남자들이 어깨에 힘도 있었는데 90 년대 미공급 시기 부터는 남자 들은 지키는 멍멍이라고 정도로 남자들의 위신이 가정의 책임을 지는데서는 많이 추락되었어요

여성들이 아무래도 남성보다 조직적인 제약을 덜 받기 때문에 가정의 생계를 지는것이 여성이었던 거죠. 장마당의 활동으로 인해 여성이 경제력이 있었기에 여성들이 가정에서 대우를 받기 시작했지 인권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 옛 속담에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다라는 뜻이 있지만 북한에서는 정말 산입에 거미줄 쳐 굶어 죽거든요 이를 가정에서 해결애 줄 수 있는 방법은 여성들 밖에 없다보니 남편들이 여성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밖에서 약간 큰소리 치면서 실제로 가정 내부로 들어가서는 그리도 집안의 부인들의 목소리가 힘이 더 있는 상황이 되어오면서 북한의 가장인 남성들이 불쌍하게 되었죠

이런 상황은 바로 북한 당국이 가장인 남편의 권위를 추락 시켰지만 한국 여성들의 인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 북한에서는 실제적으로 이런 인권이라는 용어는 사실 크게 신경을 안쓰고 또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저희들이 북한에서 살아온 경험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인권 인권 하는데 나는 관연 북한에서 인권에 대해서 그리고 인권을 박탈 당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나 ? 전혀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북한에는 여성정치가 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특히 북한여성들의 국제적인 활동이 너무 미미 하다고 지적하자 김 대표는 북한의 환경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 한국이나 중국에서 딸을 낳아도 딸 하나가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얘기가 많이 나올때 조차도 북한에서는 아들 중심의 아들선호 사상이었고 대학을 갈때도 남자들 우선이었고 그리고 심지어는 김정일이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것 보기 싫다고 해서 여성들이 자전거를 일체 못타게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가 2000년이 훨씬 지난후에도 여성들이 자전거 타는 것조차도 못하게 하는 북한인거죠

따라서 이런 사회현상으로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확실한 개념도 없어 여성들의 인재 양성이나 인재를 배출하는데 큰 영향을 받는다고 전합니다.

: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당연히 저조 할 것이고 특별하게 출신성분이 좋아서 천재적인 지능을 타고 나서 어느 간부의 눈에 딱들어서 여성들을 아예 내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 그래도 해외 나갔을때 외교적인 면에서 대화를 할때는 여성의 말 한마디가 더 힘이 있을때가 있죠거든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성비하 발언을 여성들도 그대로 받아 드리고 있는 현상은 남북이 현저하게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 북한에서 쓰는 말인데 여자는 머리는 길어도 생각은 짧다는 말이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여성비하 발언이죠. 대한민국에 이런 말을 쓴다면 훼미니즘, 정치적 법률적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난리가 날겁니다 북한남성들이 보통 쓰는 말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전반적인 흐름이 이렇다 보니까 여성들의 재능에 따라 특별 교육으로 인재로 키우는 일은 어느 예능 부분에서는 가능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부분에서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군요

: 특별한 분야에서 여성을 많이 배출하라고 얘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북한의 역사를 볼때 여성보다 남성에게 주는 오더 즉 요구하는 특권 같은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여성들이 진출하며 올라오기에는 많이 억눌린데다 생계적인 부분을 많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언제 나의 재능을 특히 나의 끼를 표출해서 목적하는데 까지 도달하려고 하는데 이를 막는 사회적인 환경있다

한국에서도 남여 차별로 남녀 평등권을 주장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여성들의 최고 교육으로 능력에 따른 기회가 남성보다 많은 부분이 있다는것을 탈북여성들도 인정합니다.

김대표는 딸 많은 집에서 딸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아들과의 심한 차별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 딸 셋에 아들하나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저의 둘째 언니는 태어나면서 바로 이름 조차 안지어주었고 저의 오빠는 태어나자 마자 너무 기뼈서 이름을 나라라고 지었어요 제가 태어났을때 막둥이인데도 딸이라고 집안에서 제일 귀엽고 예쁘게 자라야 하는 막둥이인데도 불구하고 미움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아들은 아들이어서 저는 아들로 태어나지도 못한 것이 말괄량이어서 집안에서 온 구박들 받고 자랐던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씩씩한 것이 아닌가 해서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탈북에 북송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자유와 인권연대를 결성해, 북한 주민들은 물론 특히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 활동을 하는데 통일되면 탈북민 여성장관을 하셔야 될것 같아요

김: 할렐루야 웃음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