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미북회담서 인권 문제 제기 기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일 백악관에서 탈북자들을 만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일 백악관에서 탈북자들을 만나고 있다. (ASSOCIATED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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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보다 이제 앞으로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탈북민들은 남북 정상회담 전에 많은 단체 또 많은 사람들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 문제를 언급이라도 해달라고 요청 했지만 한국정부는 북한 정권과의 정책만 있었지 북한의 주인인 인민들의 가장 시급한 인권문제는 외면했다고 평했습니다

김: 먹고 살겠다고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고 잡아서 죽이고 감옥살이 시키고 온갖 고통을 다 당했던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리고 우리 탈북자 입장에서는 정말 납득이 안되거든요

여성시대, 지난 시간에 이어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탈북여성 가명의 김선교 씨의 두번째사연 그리고 탈북자들이 느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얘기는 북한 보안서에서 일 했던 김시연 씨에게 들어봅니다.

탈북민들도 김정은이 미북 정상회담까지 가기에는 북한이 처한 현실을 김정은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말합니다.

김: 자기네가 그냥 뻣대어 보았자 결과가 뻔하다는 것을 빨리 인지 하고 유리한 방법을 찾은것이 종전을 선언하면 전쟁을 안하는 것이 되니까 체제 유지 하는데 이롭지 않아요 그 다음에 다른 핵무기는 어차피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안되는 것이니까, 저희는 의심이 많아요 하도 당하고 살았으니까 그리고 항상 번복했고 말해 놓고 지키지 않은일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겉으로는 핵 실험장 풍계리 폭파 사진도 나오고 또 유엔사찰 기구에도 보여 준다고 하지만 보여주는 것 까지는 보여준다고 해도 이미 만들어진 핵 을 은밀한 곳에 감추어 놓고 알고 있는 것만 보여주고 없애는 흉내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되어요 아무튼 북미 대화에 기대를 거는 측은 그래도 젊은 지도자가 느끼고 받아 드리는 것이 예전의 김일성 김정일 처럼 외국을 전혀 모르고 그 북한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산 사람들 보다는 조금 낫다고 …

특히 탈북자들중 북미 정상회담에 기대를 건다는 탈북자들은 통일 전이라도 서로 왕래를 할 수 있거나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가고 싶은 바람이 제일 크다고 전하는데요,

김: 탈북자들중에 그래도 기대를 가져 보고 싶다고 어쩻든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큰틀의 통일을 위해서는 탈북자들이 조금 희생을 하더라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또 안그러는 사람들은 통일이 된다고 해도 한국에서 그냥 살겠다고 북한에 가서 뭐 하느냐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의 북한의 행태를 보면 이번 회담에 대해 믿지 못하는 탈북민들중에는,

김: 통일이 될것 같지 않다고 하고 김정은을 믿느냐 김정은이 지난 남북 정상회담에서 탈북자에 관한 대책 없어 안가겠다 하기도 하고

북한 주민들의 가장 큰 고난은 바로 북한 주민들, 특히 탈북민들 모두가 당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북한에서 너무나 당하고 살았고 분단이 된 후로 그 긴 세월 동안 북한 주민들이 당하고 산 세월에 별 원통한 일과 가슴터지는 일이 얼마나 많았어요 자기네 생각에 맞지 않으면 사람을 짐승만도 못하게 처형해 버리고 탈북자들은 이런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 테이블에 놓고 회담을 해야 하지 않았느냐고 이 문제를 얘기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못되었다고 얘기를 하죠

그래도 북한의 지도자인데 상처투성이의 자신의 국민들을 다독이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오랜세월 고향을 떠나 가족들과 헤어져 산 세월에 마음속에 깊이 박힌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수 있을 텐데 지금도 중국의 탈북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런 사실을 남북의 두 정상은 생각이나 할 지 안타깝다고 하는데요,

지난 시간에 가명의 김선교씨가 탈북해서 당하는 인신매매 1부 얘기를 전해 드렸는데요 오늘 계속해서 2부 순서입니다

김선교 씨는 유치원 교사를 하다 장사 자금을 마련 해 고향으로 돌아가 장사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중국으로 갔다 생각도 못한 인신매매를 당해 후천적인 척추 장애인, 곱추에게 팔려가 아기를 낳을때 까지 담장 굴 에서 생활을 했다는데요,

김: 제가 그 집에 팔려가서 담장밑 개 굴처럼 만들어놓고 그밑에서 살게 했어요 제가 한번 잤는데 애기가 생긴거에요 꼽추 총각이죠 그 개굴같은데서 애기를 낳으니까 집안에 들여놓기는 했는데 구석에 누더기를 쌓아놓고 나를 감추어 놓은거에요 그런데 감사하게 애기가 잘 울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경찰 4명이 집에 쑥들어온거에요 그리고는 가자고 그러는겁니다. 애 아빠도 같이 잡혔는데, 경찰이 그러는거에요 애기 아빠는 사실을 하나도 불지 않았다

그러니까 애기 할머니가 제는 말을 못 한다, 중국사람인데 잘못 잡았다 북한 사람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김선교 씨는 원래 중국말을 잘했다는데요, 이 중국말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김: 제 북한 사람아니라고 그런데 제가 중국 글을 아니까 물어보는 대로 중국 글로 쓰고 그 파출 소장이 너무 아깝다고 그래서 제가 사실대로 글로 썼죠 대학 졸업하고 선생을 10년 하다 왔다고 했더니 비밀로 해 주겠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면서 인민비 5000위안만 내라고 그 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돈 다 내기는 너무 아깝워 3천 위안을 냈어요

그렇게 갇혀서 감시속에서 살았는데 어떻게 그런 돈을 마련했는지 궁금했습니다.

김: 제가 애기 아빠에게 너는 강간범이라고 내가 피해를 받았으니 돈을 주라고 그러면서 매일 20위안씩 받았어요 제가, 그 돈을 몇 년을 받았더니 그 돈이 모여졌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거기서는 더이상 못 살겠는거에요 그 사람하고는, 그때 경찰들이 그랬어요 왜 애를 밖에도 구경 안시키고 가두어 잡아 놓고 있느냐고 그다음 부터 그 집에서 나를 대문 밖으로 내 놓아 다니기 시작한거에요

밖으로 나와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돌아 보게 되었는데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태도를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김: 내가 삶이 너무 비참해서 제가 막 대들었더요 나를 죽이든지 살려서 밖으로 내 보내던지 그래서 제가 그 집에서 나와 기차를 타고 항주라는 남쪽 까지 내려왔어요.

김선교 씨를 사고 팔았던 한 교회 집사의 안내로 이미 교회를 알았기에 마침 항주에 교회가 새로 생겨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김: 그때 교회 거기서 중국말 하는 통역사가 필요해 제가 교회 간사로 일을 했어요 한족들에게는 한국말을 배워주고 한국 비지네스하는 사장님 들에게는 중국말을 배워주었는데 학생들이 많았어요 저는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고 항주에서 조금 내려 오면 코쳐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7년간의 신학공부 끝내고 선교사 안수 받고 탈북해서 오시는 분들, 지금은 탈북이지만 우리때는 탈북이라고 하기에는 좀…왜냐하면 우리는 북한에서 도망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돈 벌어 돌아가려고 했는데 잡히게 되니까 탈북자가 된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선교 사업을 하면서 남들을 도와주다 보니까 내 신분이 가짜이다 보니 너무 불이익을 당하고 제약을 많이 받는거에요

신분을 바꾸기로 하고 선교 단체를 통해 미국행을 결정하고 불법체류자들이 갈 수 있는 쉽터로 갔습니다

김: 중국 사람으로 신분이었지만 가짜죠 그런데 거기 선교단체가 많아요 선교 단체에서는 저를 믿을 수가 없으니까 석달을 그곳에 머물러야 된데요 그런데 제가 몇년을 갇혀 살다 보니까 갇히는데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너무 싫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 안들어 가겠습니다 쉼터에, 그랬더니 도와 줄 수가 없다는거에요 수많은 교회를 돌아 다녔는데 다 자기네는 탈북 길을 도와 줄 수 없데요

신분을 바꿀 길이 막히자 최후로 하나님을 믿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일단 태국으로 방향을 잡았다는군요

김: 비행기 타고 떠났어요 그런데 미국까지 어떻게 가는 것을 몰랐는데 이만갑 한국 방송 프로를 보면서 태국에 가서 자수 를 하면 태국에서 원하는 나라로 보내준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만갑 있잖아요 이제 만나러 갑니다. 그 프르그램 보고 한국에 저렇게 가는 구나를 알았어요

그런데 당시 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모든 중국 사람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아 다시 한번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김; 오면서 보니까 태국에서 4월에 전쟁이 일어나거에요 2013년 11월부터 시작된 태국 방콕에서 발생중인 일련의 반정부 시위 사태로 그러면서 중국 사람들을 한 명도 안 받았어요 그런데 태국 경제는 관광업이거든요 국가에 돈이 없는거에요 5월에 들어서서 문을 열어 놓았어요 중국 사람들은 무비자로 들어오라고 그래서 제가 무비자로 태국까지 당당하게 들어간 게 아닙니까?

태국에 도착하니 또 장벽이 있었다는군요 자유를 찾아 가는 길이 왜 이리 멀고 험난한지요,

김: 태국에 도착해서 난민수용소에서 들어가야 되는 거잖아요? 여섯달 있어야 된데요 그래서 결국 제가 6달을 채우고 난민수용소에서 2015년 1월에 바로 미국 애틀란타에 왔어요

중국에서 팔려간 그 열악한 가정에서 미국에 오긴 했지만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어떤 길로 가야 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미국이 참 좋은 것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다 해결해 주더라는 겁니다.

김: 후드 스탬프도 주고,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런데 하나님꼐서는 분명히 저에게 말 했거든요,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 없어도 있는 것 중에서 주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제가 온전한 데서 일도 하면서 제가 인컴, 수입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학교를 3개 다녔어요

김선교씨는 미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며 전문직 면허증도 따 지금은 스킨 케어, 인기 직종중 하나인데요 미용분야인 피부관리사로 보람있고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김: 제가 지금 스킨 케어하고 있는데 스킬, 재능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업종은 사람들이 그 마음을 보고 찾아가요 손님들이 오시면 손질을 해주면서 교회 가느냐고 하나님을 믿는냐고 또 교회다니시는 분들하고는 문제가 있으면 같이 고민하고 기도해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무엇보다 희망과 용기를 주면서 그들의 힘든 현장에 함께 참여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 북한에서 오신 분들이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갈 수있는 곳에 가서 체력이 되는 만큼 직접 가서 도와 드리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