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최근 한국정부가 북한에 올해 특산물인 달고 맛있는 제주 감귤 200톤을 보냈다고하죠 이는 북한이 남한측에 보냈던 송이버섯 2톤에 대한 답례라고 밝혔습니다. 감귤이 북한로 보낸 일을 북한 주민들은 알고 있는지요,
김시연 : 전혀 공개를 안할 거에요 유엔서 지원물자가 들어왔던 사실도 우리가 시장을 통해서 알 수 있지 특히 한국에서 보낸 물품은 공식적으로는 알리지 않아요 소문을 듣고 알아요.
이 제주 감귤은 물론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지도 못할 것이라는군요 여성시대 북한 보안서에서 일했던 김시연 씨와 함께 한국에서 보낸 감귤에 대한 얘기 들어봅니다.
김시연 씨는 북한에 살았을때 한국의 감귤은 먹어보기 힘든 과일이었다고 하는군요
김 : 서민들은 귤 구경을 거의 못했어요 제가 어렸을때 아버지가 출장을 가셨다가 귤 몇 알을 가지고 오셨어요 그런데 그 귤은 크고 오렌지 비슷하게 생겼는데 향기롭고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오렌지와 귤은 모두 감귤류에 속하는 과일인데요,
김 : 후에 보니까 김일성 생일이나 명절때 경축일마다 공로가 있는간부들에게 선물을 내려 보내는데 그런데 한국에서 생산하는 알이 작은 것이 아니고 엄청 크고 맛있는 귤 들을 선물 박스에다 넣어서 보낸 것을 보았어요
귤과 오렌지는 완전히 다른 품종으로 오렌지와 달리 감귤은 껍질을 벗기기도 쉽고 각각의 조각들로 나누기 쉬운 겨울철 대표 과일입니다. 오렌지는 귤보다 크고 껍질이 두껍고 즙이 많은 과일인데요 한국에 와서 보니 그 때 당시 받았던 과일은 오렌지라고 하는데요
김 : 한국 귤은 껍질이 얇고 잘 발라지잖아요 그런데 북한의 것은 껍질이 벗겨 내기도 힘들더라구요 지금 우리가 먹는 한국귤은 거의 본적이 없어요
북한에서 그 오렌지는 서민들은 알지도 못하지만 직급이 높은 간부들의 가족들은 그래도 먹을 기회가 있었다고 전하는데요,
김 : 거기는 오렌지라는 것은 모르고 다 귤이라고 하거든요 제가 시집을 갔는데 시아버지가 도당 간부였어요 그때 명절때 귤같은 것을 집에 가지고 온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도 큰 귤이었어요. 한국에서 귤이 온다는 것을 들은 기억은 있어요 하지만 본 적도 없고 먹은적도 없는데 온다면 간부들이 다 나누어 가졌을것 같아요
오렌지로 알았던 귤이 한국에 오니까 상자에 담긴 귤이 시장마다 가득 쌓여 있어 겨울철 과일로 감기예방에도 좋다고 해서 자주 먹고있다고 김시연씨는 전합니다.
김 : 며칠전에도 귤을 한박스 시켰는데 귤이 껍질이 손으로 쉽게 까서 먹을 수 있고 달더라고요 지금 환절기에 감기에도 좋으니까 귤을 많이 사먹어요
이번에 북한으로 보낸 감귤은 제주도에서 가장뛰어난 서귀포 산 200톤으로 당도도 높고 크기도 최 상품이라는 언론에서 전했는데요, 이 귤은 10키램들이 상자 2만개에 담겨 졌다고 하는데 주민들에게도 혹시 돌아 갈 수 있을까요?
김 : 그것은 간부들 선물로 내려가거나 아니면 중앙당 기관이나 고급 식당 들에서 사용하고 또 군 간부들에게도 갈 수 있고요
한국에서 이런귤이 북한이 보낸 송이 버섯 답례품으로 왔다는 것도 일반인들은전혀 알 수가 없다는데요 그런데 북한 당국이 남한의 지원물자가 온 사실을 온 국민들에게 알린 일이 있었다는 군요. 바로 한국의 대기업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지난1998년 2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직접 몰고갔던 소떼 선물이었습니다.
김 : 그때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 소하고 밀가루, 쌀 등 을가지고 왔을때는 정주영 회장이 이북에서 남한으로 가서 이렇게 성공을 해서 고마운 조국의 고향을 잊지않고 선물을 보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소떼들이 들어오는 것이 텔레비젼 화면으로 잠깐 나온적이 있었어요 시장에 쌀과 밀가루가 나오다 보니까 정주영 밀가루 또 한국쌀 이래가지고 그때 시장에서 유통이 되어서 알지 공식적으로 얼마를 가지고 왔다, 이런 것을 발표한다든지 매일 강연회를 해도 그런것은 얘기를 안해요
이번에 북한에 보낸 귤은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지만 송이버섯 역시 북한 주민들이 먹을 수 없는 식품이죠,
김 : 너무 비싸서 먹을 생각을 못해요 송이도 등급을 해서 북한 사람들이 송이철에는 송이를 따서 돈을 벌거든요 그런데 보안원들이 송이가 나는 산 밑에서 지키고 있다가 주민들이 노력을 드려서 따온것을 회수를 하거든요 , 요행히 단속에서 걸리지 않을때는 중국의 밀수로 넘기거나 외화벌이 기관에 팔거든요
그런데 공식적으로 송이만 전문으로 따는 사람들이 있다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채취한 1등급 송이는 특별히 보내는 곳이 있습니다.
김 : 공식적으로 송이만 따는 사람들이 있은데 그것은 일등품만 골라서 중앙당에 김정은이 먹는 제품으로 보내고 나머지 갓 송이 같은 것은 소금에 절여서 간부들에게 나누어 주더라고요
일반인들도 송이철에 송이를 채취 할 수 있지만 단속반에 걸리지 않아야 자신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전합니다.
김 : 북한은 산이 다 국가 소유잖아요, 몰래 산 타고 올라가서 따는데 단속에 안걸리고 중국에 밀수로 보내던가 아니면 송이를 전문적으로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가서 팔면 다행히도 자기돈이 되는 것이고 단속이 되면 다 빼앗기는 것이죠 그러니까 일반 인들은 송이가 있다면 팔아 쌀을 살 생각을 하지 송이를 먹을 생각을 안해요
봄 부터 가을 늦게까지 일하는 주부들이 겨울철로 들어서 김장을 끝내고 나면 따뜻한 집으로 모여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는데요,
김 : 겨울에는 밖의 일이 적으니까 아궁이에 불 많이 피는 따뜻한 집에 모여 앉아서 얘기를 하죠 혹시 간식같은 것, 말린옥수수 알 까가지고 가마에다 볶아요 그러면 고소해요 좀 사는 집은 거기에 설탕과 기름을 같이 섞어서 볶으면 이런 것을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또 호밖씨나 해바라기 씨를 볶아서 겨울철에 먹어요
이 정도의 여유만 있어도 겨울이 그토록 힘들고 춥지 않았을 것이라고 김시연 씨는 전합니다. 또 북한은 지금 겨울 땔감이라도 마련하기 위한 아주 바쁜시기라고 하는군요
김 : 김장하고 겨울에 땔감이 없잖아요 땔감이 될만한 것은 마른 풀이든 짐승의 변이든 옥수수 그루터기등 무엇이든 다 주우러 다녀요 그리고 논이나 콩 심었던 자리 이삭 줍기, 또 산에 올라가는데 산에 보이는 나무라는 것은 이미 다 베어서 불때다 보니까 산에 잔풀들, 작은 나무들이 자랄새 없디 다 베어오기 때문에 가을에는 많이 바빠요
최근에도 산에가서 땔감을 주워모아 생활을 하는 주민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고 하는군요
김 : 아무리 생활이 괜찮아 졌다고 하더라도 한 70%는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양식은 죽이나 옥수수 밥으로라도 채운다고 해도 땔감이 중요하거든요 이것이 없으면 온 겨울을 떨면서 지내야 되니까..
김시연 씨는 그래도 북한에서 중,상류층 생활을 했다는데요 한국에 청착하면서 집을 배정받고 겨울철의 난방이 되는 것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 : 제가 11월말에 집을 받았으니까 관리사무소 직원이 와서 난방을 켜주면서 이것만 켜놓으면 따듯해 진다고 하더니 금방 따뜻해 지더라고요 제일 좋았던 것이 난방만 켜면 따뜻해지잖아요 그리고 수도물 틀면 더운물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엄마 생각이 너무나서 눈물이 났었어요
북한에서 친정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나섰을때 손 수레에 땔감을 가득 싣고 내려 오시는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팠던 일도 겨울철이면 떠 올리는 기억입니다.
김 : 어머니도 젊었을때는 아버지가 간부라는 직위도 있고 해서 땔감 고생은 안하셨는데 아버지가 퇴직한 다음에는 땔감 때문에 두 분이 같이 몇십리 산을 타고 올라가 나무를 해오셨어요
아버지가 간부로 퇴직을 하셨지만 퇴직금 같은것은 전혀 없다고 하는군요
김 : 저희 아버지는 6.25 전쟁 참가자 여서 또 군관 장교로 32년인가 복무하셨어요 훈장이 양쪽 앞 가슴에 다 못 달정도로 훈장도 많으셨는데도 퇴직금이라는 것이 전혀 없고 7.27 이나 전승기념일에 1년에 한번 전쟁 노병들 불러서 밥 한끼 식사와 양복지 한벌주고 이것도 한 5년정도 한 것 같아요
나이가 많아 퇴직한 모든 분들 중에 굶어서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았다는군요.
김 : 저희 친정아버지가 사시던 동리는 군대 가족 사택이었거든요 거기 같은 동료들이 저희 아버지를 비롯해서 다 나이가 같으신 연배였거든요 그런데 거의 60전후로 거의 굶어서 다 돌아가시고 …
다행스럽게 김시연 씨는 북한에서 형제들이 다 잘 풀린데다 어머니의 생활력으로 아버지는 건강하게 오래 사셔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김 : 저희 아버지는 오빠가 힘이 있으니까 부모들에게 배급식량 부식 물도 가끔씩 실어다 주고 또 어머니가 돼지도 키우고 술 만들어 팔고 해서 아버지는 80까지 사셨어요
지금도 고향을 떠난 많은 탈북민들은 겨울철 추위속에서 고향의 부모와 가족들이 어떻게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지, 염려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 : 제일 걱정 하는 것이 추워서 북한 사람들이 또 올겨울을 나는지 얼어 죽지는 않는지 탈북민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김시연 씨는 지금 북한의 꼭 필요한 것이 감귤인가, 주민들이 따뜻하게 지낼 모포를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