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12월,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크리스 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때죠.
김시연 : 한국은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준비도 하고 백화점등 상점에서 행사도 많이 하고 그러는것 같아요
김시연 씨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계획은?
김 ; 한국에 와서 교회를 다니고 있거든요 거기서 크리스 마스를 보냅니다.
북한에서 보안소에서 근무했던 김시연 씨와 함께 합니다
연말이면 북한에 두고온 가족 형제 자매가 절로 그리워 질때인데 북한의 어려운 사정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생활비를 보내는 가족들도 있겠죠. 탈북민들이 돈을 전할길은 여전히 어려운가요 아니면 조금 쉬워졌는지요?
김 : 제가 요즘 북한의 집에 돈을 보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래된 사람들은 자꾸 돈을 보내지 않으려고 해요
이제 탈북한지 오래된 사람들은 북한에 돈을 보내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는데요, 그 이유를 들어봅니다.
김 : 여기서도 살기 힘드니까 보내기는 하더라도 조금씩 30만원에서 50만원 사이로 적은 액수를 보내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10년 이상 된 사람들은 별로 보내려는 마음이 없는것 같아요 그런데 금방 탈북한 사람들은 가족과 헤어진 애틋함이 남아있어서 그리고 아직 자기네들도 한국에서 살기가 힘든다는 것을 잘 모르니까 돈이 생기면 막 보내더라고요
가족과 헤어진지 얼마 안되는 최근의 탈북자들은 이미 정착한 탈북민들이 했던 것과 같이 연말이면 생활자금을 보내고 있다는군요
김 : 최근에온 저희 언니네 친척도 북한쪽에서 힘들다고 하면 다만 얼마라도 보낸다고 해요 그런것을 보면 최근에 온 사람들이 보내지 오래된 사람들은 자꾸만 계속 달라고 하고 보내면 보내도 끝이 없이 어떻게든 자립해서 살 생각을 안하고 다 써버리고 또 사기당했다고 보내라고 하니까 오래된 사람들은 돈 보낸다는 얘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어요
생활비를 보낼때 가장큰 문제가 브로커, 중개인들이 받는 수수료 문제인데요 역시 이 금액은 오르면 올랐지 내리지는 않는다는군요
김 : 지금은 수수료도 많이 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전하게 보내는 통로는 수수료가 많으니까 그렇게 힘들게 번 돈 절반 정도를 수수료료로 떼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보낼 의욕도 없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브로커의 속임수로 아예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군요
김 : 최근에는 보위부와 짜고 돈을 가로채고 또 보내려던 사람은 그 사람대로 감방에 넣고 그래서 돈거래 하는 것 정말 조심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측 브로커도 개입이 된다는데요, 그들이 중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김 : 중국측 브로커도 같이 하다가 자기네가 걸린다든가 좋지않은 일이 있으면 북한 보위부와 같이 작당을 하는 경우도 있고 중국측 브로커를 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인데, 이 중국측 중개인들이 다 북한을 드나드는 사람들, 화교들이 많으니까 정말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실수를 할 수 있어요
김시연 씨는 북한에서 살았더라면 교회도 모르고 교회다닐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이라고 하는군요
김 : 북한은 일반인들에게 종교를 갖지 못하게 하고 형식상으로 평양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성당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형식상으로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보여주기위한 것이고 일반주민들은 전혀 종교를 믿지 못하게 하거든요 그래서 북한에 있을때는 종교라는 것이 있는지 잘 몰랐고 외국소설을 보면서 어릴때 천주교 성당 같은 것을 본 것 같아요 그때는 무슨 얘기인가 하고 읽었는데 중국으로 탈출해서 종교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았어요.
이제 연말, 크리스마스의 절기지만 북한은 1월1일 전부터 내려오던 양력설을 기다린다고 말함니다.
김 : 북한은 김정일 생일 김정일 생일 이런것을 더 중요하게 했지만 일반 주민들은 그래도 마음속으로 연말 지나 설이라고 하고 새해를 시적하는 싯점이기 때문에 엄청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리고 북한은 1월1일 양력설을 쇠기 때문에 않아요 그래서 12월 31일이 되면 그때는 집이 어려워 없어도 어떻하던지 떡을 해서 먹는 것이 풍습으로 되어있어요 그래서 없는 와중에도 설날에 떡을 해먹을 쌀은 모아놓았다가 기계 방앗간에 가서 빻아 오는데 방앗간 거리가 한 15분 20 분 걸어가야 있거든요 그래서 설이 되면 저는 떡가루 내러가는것이 일이었어요 가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후내 기달려서 겨우 가루를 빻아가지고 오곤 했거든요
이런 일을 도맡아 하다 떡가루를 가지고 오다 얼음판에서 넘어져 가루를 쏟았던 기억이 있다고 하네요.
김 : 어머니는 집에 일이 많으니까 설에는 내가 갔었어요 밖에서 추운데 떨면서 가루를 내서 이고 오다가 다 쏟았어요 길에다가, 북한은 길이 땡땡 얼어 있었는데 다 쏟은 것을 흙이 묻지 않은 것을 담아 와 가지고 쏟았다고 해서 어머니 한테 야단 맞던 생각도 나고 … .
12월의 크리스마스 세계적인 명절이지만 주민들은 크리스마스도 모르고 전혀 연관이 었었던 거죠
김 : 크리스 마스가 있는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크리스 마스에 대한 개념차체도 없어요 설이 가까워오고 새해가 되니까 그 설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설되면 가족 사진 찍으러 다니고, 제가 북한에 있을때는 흑백 사진을 많이 찍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천연색 사진도 많이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있을때는 가족들과 흑백 사진을 찍으러 여러번 갔었어요
당시에는 쌀도 귀했었는데 떡을 만들기 위한 쌀을 비축하는 일도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는 거죠.
김 : 90년대 미공급이 시작되면서 부터 설이 되어도 떡을 못해 먹는 집이 많았거든요 저희 친정은 괜찮게 살았으니까 아이들이 새뱃돈을 받으러 일부러 다녀요 그래서 엄마가 애들이 오면 설인데 빈 손으로 보낼 수도 없고 하니까 동리 어른이시라고 인사하러오면 다만 얼마라도 쥐어주는데 너무 많이 와 가지고 떡도 못먹고 없는 집 아이들이 저희 친정집에 많이 왔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떡도 쥐어주기도 하고 돈도 쥐어 주면서 보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설에 먹을 떡쌀은 준비하고 있다 해먹지 않을까 싶어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경제제재를 자체적으로 살리기 위한 모습도 보인다는데 효과를 기대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 :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닌다는 것이 형식이지 국가에서 지원을 해 준다거나 자본을 대 주지 않는 이상에는 나아질 수가 없고요 개인들이 중국과 밀무역을 해서 돈을 벌어 운영하는 것 같아요 국가가 자본을대서 은행에서 대출을 해 준다던가 하는 일도 북한에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느기업소에서 너네 신발을 몇만 켤레 생산하가로 하면 그 기업소 지배인이 그 기업소에 데리고 있는 사람을 중국과의 무역을 시켜 거기서 벌어드린 돈으로 원자재를 사서 생산을 해서 그것도 모든 주민들에게 다 돌아가게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현지지도 올것 같으면 그때 막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모양새를 띠고 현지지도 나오면 보여주고 그런데 평양시내는 다를 수가 있죠. 국가에서 조금이라도 지원이 있을것 같아요 그런데 지방의 공장기업소는 분명히 기업소마다 공장마다 자기네가 돈을 벌어서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오빠가 이런 계통의 일을했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다는군요 청진의 김책제철연합기업소는 북한에서 철 생산량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다음2위가 제이 금속연합기업소인데 오빠가 다녔다고 하는군요
김 : 저희 오빠가 제이 금속 건설 연합 기업소에 외화벌이에 있었는데 이금속 건설이라는 것이 공장 건설과 건물 건축 하는 기업소인데 종업원이 2만명이거든요 북한에서 김책 제철 기업소가 5만 명인데 2만명이면 그 다음가는 기업이거든요, 거기서 오빠는 후방무역 이런데서 돈을 벌어 공장직원들의 배급을 해결하고 그랬어요
이런 기업들이 국가의 아무런 도움 없이 중국과의 장사를 통해 자금을 마련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김 : 중국사람 대방하고 장사를 해서 벌어드린 돈으로 배급도 좀 주고 원자재를 사서 만들고 하는 상황이에요 북한은 다 이런 시스템, 제도로 돌아가지 국가가 자본을 대출해 주어서 물건을 생산하라는 경우는 절대로 없거든요
큰 기업소를 꾸려 가기 위해 국가의 지원이 전혀 없이 7:54 고난의 행군시절때 그래도 공장이 돌아간 것은 국가의 지하 자원 덕분이었다고 말합니다.
김 : 우리 제철 소는 광물자원이 많으니까 무산 광산에서 철광을 캐다가 컨베이 설치를 해서 컨베이로 철광이 들어오면 그 철광을 녹여서 철을 생산했는데 우리오빠가 다녔던 그 회사는 건설 업체였기 때문에 시멘트는 국가에서 어느 시멘트 공장에서 받아서 써라 예전에는, 이런 것은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시멘트도 생산이 잘 안되니까 가져다 쓰는 것도 거의 없고 만약 평양 상원 시멘트에서 생산을 해서 거기서 유일하게 시멘트가 나온다고 하면 전국적으로 그 회사에 달라붙어서 뇌물을 주고 하면서도 그 시멘트를 많이 받아올 수가 없어요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그래서 그 시멘트를 받아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 팔아서 사들인 그 사람들이아파트를 지어서 개별 분양을 하고 그러니까 지금은 다 개인이 돈을 들여서 무언가 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지금 북한 당국에서는 이런 개인들이 하는 사업을 전면 허용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김 : 국가 자체가 국정가격의 시멭트가 키로그램당10전이다 그러면 그 가격을 허울좋은 가격일 뿐이지 모든 것이 다 야미 가격으로 돌아가거든요 제가 있을때 부터 그만큼 채산량이 없기 때문에 정말 비싼 가격으로 거래가 되는거에요 그래도 국가에서는 별로 텃치, 상관을 국가에서는 상관할 이유가 없죠 공장끼리 거래를 하니까 국가에서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돌아가니까요
여성시대 ,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