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느덧 계절은 입추가 지났습니다. 가을에 들어섰다는 이야기이죠. 한국은 지금 물난리가 나서 아우성입니다. 하수시설이 잘되어 있다는 한국에서조차 물이 범람하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에서 물난리가 나던 때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둥둥 떠내려 오는 호박과 꽥꽥 거리며 물에서 허우적대던 돼지 그리고 강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음머, 음머 하고 소리 내던 송아지 모습까지도요.
서울 지역이 물난리가 나서 퇴근하던 차량들이 물에 잠기고 반지하 방에 물이 흘러 넘쳐서 인명사고도 나는데 제가 사는 아래지역은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고 무더위가 계속됩니다. 이런 가운데 3개월 전에 시작한 탈북민 어머니들과 함께한 과정이 마무리 됐습니다.
집단 상담을 통하여 친구들끼리 그리고 이웃이나 자녀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마감 지을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도 해보고 자신이 상대방이 되어보는 훈련도 해봤습니다. 제일 처음 1회를 시작할 때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시던 기대대로 마무리 할 때 즈음에는 서로 알륵 관계를 가졌던 친구를 용서하고 이해를 하는 시간을 가지는 분도 계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오해하고 다툼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가장 좋아하시던 흥겨운 노래 박자에 맞추어 발과 다리 그리고 팔 등 온몸을 모두 움직이는 춤 동작인 라인 댄스는 흥겹고 즐거웠지만 평균나이 80세인 어머니들께는 무리였다는 생각을 해봤지요. 늘 좋은 곳에 와서 건강하고 젊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평균 연령을 고려하지 못한 저의 실수였답니다. 대신 어머니들은 라인 댄스보다는 흥겨운 우리 가락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많이 웃고 즐거웠던 시간이라고 하시네요.
올해 처음으로 어머니들과 함께 하는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머니들의 성격과 좋아하시는 점, 싫어하시는 것 그리고 어떤 것을 가장 원하는지 등을 알아가는 시간이 되면서 탈북민 어머니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충을 한결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머니들에게 자녀들의 생각을 전달해주는 기회도 생기게 되었는데요. 탈북민 어머니들이나 그 자녀들 모두 서로를 위하면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다 보면 서로 오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런 어머니들에게 한국까지 힘들게 와서 어머니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식 걱정으로 한푼 두푼 아끼면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자녀들의 심정을 이야기 드리고 그 마음 또한 자녀들이 몰라서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요. 그런 상담과 어머니들과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은 자녀 세대에 대한 마음을 열고 이해를 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휴대폰에서 물건을 골라서 구매하는 방법도 배워드리고 또 어머니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싼 가격으로 골라서 구매 해서 어머니들의 집 앞에 배달이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들에게 필요한 일을 도와드리면서 한 번씩 문뜩문뜩 드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좋은 곳에서 자식이 드리는 효도선물 한번이라도 받아 보셨더라면 얼마나 좋으셨을까.
오늘 그렇게 어머니들과의 프로그램을 끝내면서 그 동안 수고해주신 선생님들과 어머니들께 선물을 드리고 또 점심식사도 맛있게 했습니다. 한국은 이렇게 회의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시작이나 마치기 전에 선물이나 기념품을 만들어서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큰 행사장에서는 행사나 프로그램 이름을 찍은 공책이나 볼펜 또는 수건 등 여러 가지 기념품을 나눠주지만 저희처럼 몇 명에게만 필요한 경우에는 상점 같은 곳에서 구매를 해서 나눠드린답니다. 펜촉 하나 얻으려 해도 어디서 파는 것도 마땅치 않아서 만년필을 수리하면 온 손바닥과 방바닥에는 잉크범벅을 만들어놓고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 북한의 아이들에게 여기에서 홍보물로 마구 뿌려주는 수첩들을 한 가득 주어다가 안겨주고 싶고 아이들이 쓰고 싶어 하는 볼펜도 볼펜 심 두께를 가려가면서 가져다 주고 싶습니다.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어머니들이 했던 말이 생각 납니다. 주마다 맛있는 간식을 주고 가고 오고 더운 날씨라고 차로 모셔가고 모셔왔다고 우리가 마치 북한에서 도당책임비서가 된 것 같이 출세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머니들이 한국에 오신 것만 해도 출세하신 것 맞죠. 그리고 우리가 북한에서 살면서 언제 이렇게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닐 생각인들 해봤겠어요. 하니 모두 맞지 맞아 하시면서 호응을 해주십니다.
이렇게 우리 어머니들과의 즐겁고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를 하기 위한 심리치유 프로그램은 마쳤지만 앞으로 어디 나갈 데가 없으면 심심해서 어쩌냐고 하시는 어머니들의 말씀이 또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먹고 살 걱정이 없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 것인지가 고민인 우리 어머니들을 모시고 가까운 시일에 경치 좋은 곳으로 또 한 번 나들이를 나가야 하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방송 여기에서 마칩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