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정경화 씨⑥ ‘탈출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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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여성시대에서는 격주로 탈북자들이 전하는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생활, 탈출, 중국에서의 숨 가쁜 얘기들 그리고 제 3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가기까지 많은 사연을 눈물과 한숨, 그리고 웃음으로 풀어놓습니다.

지난해 남한으로 입국한 정경화 씨의 사연 연속으로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정경화 씨는 북송돼 노동 교화소에서 나와 중개인을 따라 다시 중국으로 탈출합니다. 인신매매도 당하고 여러 가지 힘든 고비를 넘기며 다행히 중국인 남편의 도움으로 음식점을 운영하게 됩니다. 그러다 한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조선족들이 많은 곳으로 가서 일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곳에서 있었던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얘기 그리고 구체적인 탈출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정경화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질문)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제 브로커 ,중개인과 중국을 탈출해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 돈을 계약한 부분까지 얘기를 들었는데요, 중국을 떠나기에 앞서 일하시는 식당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난 장면을 잊기 못한다고 하셨는데요, 먼저 그 얘기부터 들려주시죠.

----우리 무역하는 북한 사람들이 내가 일하던 식당에 식사하러 왔을 때 조선족들이 북한과 같이 무역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조선족들이....


질문)

그러니까 조선족들이 북한 사람들을 데리고 식사하러 오는군요.

----예, 같이 무역 일을 하니까 그래도 북한사람들을 잘 먹이겠다고 북한 사람들은 아무리 무역을 한다고 해도 다 불쌍해요. 내가 지금 한국에서 사니까 북조선에서는 무역 일을 하면 직업이 좋고 잘산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한국에서 사는 것이 비하면 그 사람들을 정말 못사는 거죠.

질문)

그러니까 중국에서 식당일을 하실 때 일이죠?

----그렇죠, 사장이 그때 조선족 언니였는데 조선족 언니가 북한 사람들이 오니 너는 나가서 접대하지 말고 주방에서 음식 담는 일이나 하라는 거예요 원래 내가 서빙, 접대하는 일을 했었는데 나가지 말라는 거죠 혹시 말씨에서도 그렇고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나니 나가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빙을, 접대를 못하고 안에 있는데 아무리 부엌에 있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이 술 먹고 큰 소리로 얘기할 때는 북한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는 거 아네요?

질문)

그렇죠, 바로 옆에서 북한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니 어쩌셨어요?

----마음으로는 오빠 생각도 나고 동생 생각도 나고 특히 동생 생각이 났는데요, 내 동생도 배일 했어요. 그러니까 동정이 가서 김치고 뭐고 더 담아서 주고 싶고 그러는데 거기에도 다 보안원 감시가 붙거든요. 무역 일을 하지만 보안원이 다 따라다녀요 보위부 지도원, 무역하는 지도원, 선장도 있고 기관장도 있고 이렇게 해서 5명이 앉았는데 이래요 “우리 어버이 장군님께서는 방침이 그렇게 되지 않았소," 자기들끼리 말을 해도 항상 김정일이 라는 말도 못해요. 어버이 장군님 김정일 장군님 내가 그래서 '에이 말라빠진 김정일 장군님 어버이 장군님' 속으로 생각하는데 조선족 여성이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내 참 더러워서 하면서 투덜투덜 대는 거예요.

질문)

접대하던 사람이요?

----네네 그는 북한 아이니까 나보고 저 사람들이 어버이 장군님 이럽디다 라는 말도 없이 혼자서 투덜대는 거예요. 지금에 와서 혼자 투덜대는 것이 다 이해가 돼요. 북한 여성이 흉내까지 내는 거예요 입술을 쭉 내밀며 “ 어버이 장군님....” 하면서 그렇게 흉내 내는 것 보고 웃고 말았죠.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식사를 다하고 나가니 나는 부엌 안에서 살며시 보며 정말 불쌍하다, 불쌍하다, 지도원이나 보위부원이나 좀 살이 있지 선장이나 기관장은 빼빼 말랐어요. 그렇게 마른데다 잠바 위에는 김일성 김정일 초상 배지를 달고 있더라고요. 그 배지는 왼쪽 심장 쪽에 항상 달고 다녀요. 그때가 8월 중순이라 너무 더워서 내가 밖으로 나오니까 우리 식당에서 식사하던 북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다른 식당에도 있었던 것 같아요. 한 열 명이 넘는 것 같아요 우리식당에 5명이 왔는데 보지 못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나갈 때 창문으로 다 보여요. 그런데 내가 본 사람이 아닌데 배지 단것을 보니 조선 남자였어요. 밖에 나가서 봤는데 도둑이 제 발이 저런다고 나를 알아보는가, 싶어 펄쩍 놀라서 뒤로 돌아섰다가 다시 보고 싶어서 우리 북한 사람들이고 내 동생 생각이 나더라고요. 배를 타고 여기에 나온 것을 보니 배꾼이다 싶어 동생 생각이 울컥 났어요. 그래서 좀 멀리 떨어져서 그들이 행동하는 것도 보았는데 그 더운 때도 잠바를 벗지 못하고 절반까지 내놓고 김일성배지는 딱 내놓고 더워도 옷도 마음대로 벗지 못하고...


질문)

김일성 배지 단 것 때문에 옷을 벗지 못하는 건가요?

-----네, 저 사람들은 북한을 나와서도 옷도 마음대로 못 벗고 자유도 없고 다니는 것도 그곳에서만 왔다 갔다 하더니만 자기네 있던 곳으로 다시 들어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그 더운 날에 두꺼운 잠바 긴것을 입고 우리는 다 짧은 옷을 입고 있는데 바지도 반바지를 입고 있는데 북한 사람들은 긴 바지에 아래위 같은 색깔의 잠바를 두꺼운 옷을 입고 얼굴을 가마 잡잡하고 여위어 그거 보니 내 동생 생각이 더 났어요. 그래서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울었어요. 막 우니까 조선족 언니가 왜 우느냐고 그래서 좀 전에 북한남자 보았는데 내 동생 생각나서 ... 내 동생도 아직도 불쌍하게 억눌려서 이렇게 이 더운데 긴 바지에다 두꺼운 잠바를 벗지도 못하고 그 김일성 배지가 무엇이기에 저렇게도 숨 막히게 사는가, 동생 생각하니 너무 불쌍해서 운다고 하니까 그러니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 눈치채지 못하게 눈물 거두라며 여기에 있는 동안 무사해야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 조선족 사장 언니 말이 감사해요.


질문)

그 식당에도 북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식당이었네요.

-----네, 나는 그것을 몰랐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 언니가 여기도 북한 사람이 잘 온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이게 아니구나, 여기도 내가 있으면 안 되는구나 나는 북한이라면 생각이 순식간에 여러 갈래에요. 그것도 이때뿐이지 어쨌든 벌어야지 한국도 가고 하잖아요. 이 언니는 식당의 사장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정 바쁘면 조선족과 맞서기도 하고 몸만 피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위험한 일도 당하고 북한 사람들 직접 보는 등 위험한 일도 당하기도 하고 그렇게 보내다가 10월 중순 끝나고 그 때는 브로커와 약속이 다 되어 있기 때문에 가기로 하고 돈도 다 마련됐지 않아요.


질문)

중국에 오래 머물다 구체적인 탈출 계획은 8월에 시작해서 10월에 됐군요.

-----오래 있었어요. 탈출 말 나면서 나는 비용이 마련됐지만 북한 여자가 또 하나 있었어요.

질문)

네 지난 시간에 간단히 말씀해 주셨는데 좀 자세히 전해주시죠.

----북한에서 여권은 떼 가지고 나왔는데 북한으로 다시 가지 않고 조선족 남자를 만난 거예요. 그 남자와 살기로 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온 여자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북한여자는 조선족 남자를 만났지만, 한국으로 들어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브로커인 그 언니가 조선족 남자가 있지만 이 여성의 사진을 찍어서 한국으로 가지고 간다는 겁니다. 한국에는 부인이 없는 남자들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이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드릴 남자에게 이 여자가 지금은 중국에 있는데 한국에 오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 여인을 도와주어서 돈을 좀 대 달라는 겁니다.

질문)

그러니까 이 여인을 보고 마음에 있으면 미리 탈출비용을 대달라는 거군요.

----네, 그렇죠. 남자를 하나 구하려니까 한국남자들이 중국에 있는 탈북여성에게 그것도 만나지도 않고 사진만 보고 돈을 선뜻 해주는 남자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돈이 마련 안 되어서 한 달 넘게 기다렸어요 글쎄... 그 여자가 돈이 돼야 갈 수 있으니까 결국은 내 돈 중국 돈 150만원을 절반을 꾸어주고 그다음에 브로커, 다른 브로커에게 인계 주었죠. 그런데 그 남자 브로커가 대체로 한국으로 가려는 우리에게 꾸어주었어요 그래서 떠났어요.

질문)

그럼 그 여성 탈북자와 정경화 씨 두 사람만 떠난 겁니까?

----네, 우리 둘 다 중국 기차 타는 것도 모르니까 북한여성과 함께 살던 조선족 남자가 같이 기차표 사서 가는 곳까지 어느 곳 까지 하면 그 조선족은 다 알더라고요 우리끼리는 가라고 해도 못 가겠어요. 그래서 조선족 남자가 같이 가서 거기서 다른 탈북자들과 합류해서 남자 브로커가 길림성에서부터 요녕성으로 해서 중국 어느 곳인지 지금은 이름도 잊어 버렸는데 청주인지 어딘지...

질문)

그러니까 곳곳에서 사람들을 다 만나서 ....

----예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다 만나서 합세하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겁니다. 7살짜리 아이까지 합해서 모두 9명이 떠났어요.

질문)

어휴 9명이면 대 부대네요.

----네, 진짜 대부대죠. 다른 사람들은 뒤에 들어보니까 4명에서 6명 정도 떠났다는데 우리는 9명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질문)

또 더구나 어린이가 있었으니까요.

----그렇죠, 산을 오르고 그러는데 중국을 빠져나오는데 정말 힘들고 일도 많았어요.

네 정경화 씨 그 얘기는 다음 시간에 차근차근 풀어주시고 오늘은 여기서 마쳐야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 지난해 초 한국으로 입국한 정경화 씨의 사연이었습니다. RFA 이원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