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저는 요즘 몸이 너무나도 바쁩니다. 왜냐구요? 곧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먼 거리를 다녀와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향의 친구들을 만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두부밥이며 식재료들을 만드느라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나서서 고생을 도맡아 합니다. 약속 장소는 고향 친구들 중 제일 막내가 가까운 충청남도 예산이라는 곳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한국은 이런 모임이나 휴가철 놀러가는 곳을 정할 때 자기가 발로 가서 확인해보지 않아도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어디가 좋은지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다녀온 사람들이 올려놓은 평가를 꼼꼼히 읽어 보고 많은 사람이 좋다고 권하는 곳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래도 늘 장소가 정해지면 맏언니가 나서서 현지답사도 해보고 정했는데 이번에는 오로지 인터넷 정보 하나만으로 장소를 정하고 내일이면 친구들 얼굴을 보기 위해 장거리를 움직입니다.
부산 가까이 사는 저만 늘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어서 언니들이나 친구들이 미안해하지만 그래봐야 일년에 한번정도밖에 못보는 얼굴인데 그쯤한 고생은 감안해야 더 반갑지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대구에 들러서 어릴 때 머리끄뎅이를 잡아 뜯으면서 싸웠던 친구와 그 아들을 태워서 함께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래 이렇게 갈 때 같이 가자 우리네 고향친구 (들이니…) 우리끼리 개안타 걱정하지 말고 같이 온나. 같이 가자, 그래 또 얼굴 한번 보겠다.
어릴 때에는 원수같이 싸웠는데 어쩌다 한국에 와서 만나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얼싸안고 울기까지 했답니다. 그래도 그 친구가 제가 큰수술을 받았을 때에도 어린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와서 병실을 지켜주고 했지요. 마취약이 미처 풀리지 않아 자꾸 자려는 저를 깨워야 하는데 이 친구가 북한에서 싸우던 말투 그대로 “눈을 안 뜨고 자꾸 자면 자부대(머리끄뎅이) 확 잡아뜯어놓는다?” 하는 바람에 비몽사몽간에 웃겨서 웃음이 터져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마주앉아서 누구네는 어떻게 살았던 것까지 다 알만한 동네에서 와서 한말을 이제는 수십번도 곱씹지만 그래도 즐겁고 그래도 만나고 싶은 것이 고향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괜히 흥분되고 즐거워서 오일장에서 두부 10모를 사다가 규격에 맞게 자르고 물기 찌워내고 기름에 튀겼습니다.
두부밥을 만들 때면 늘 생각나는 것이지만 북한에 붙들려갔을 때 감방 안에서 먹던 두부밥이 생각납니다. 당시 밖에서 5원 내지는 10원이면 살 수 있는 두부밥이 감방 안에 들어오면 두 세배로 가격이 뛰지요. 그래도 그런 두부밥을 한개만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메옥수수를 껍질채로 삶아내서 도토리 된장국을 부어주고 소금간이 제대로 되지도 못한, 돼지도 머리를 돌릴 음식을 먹으면서 창자는 늘 굶주리고 양념 냄새가 코끝을 진동하면서 중국에서 해먹던 기름진 음식이 생각이 났지요.
어쩌다 쉬는 시간이 되면 “이론식사”(상상속 식사)를 합니다. 계란을 그릇 모퉁이에 탁탁 깨서 노란 계란을 꺼내서 젓가락으로 휘휘 젓고 달군 팬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풀어놓은 계란을 쏟으면 치지직~~하고 이야기하는데 한번도 중국에 못 가보고 붙들린 아줌마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엄마야, 계란을 그냥 삶아먹어도 되는데 아까븐 기름에는 왜 지진다오?” 그땐 그 말이 웃겨서 웃었지만 지금 다시금 생각해보면 그 흔한 기름과 계란도 없는 곳이 북한이지요.
제가 어쩌다 두부밥 재료를 튀기면 임자가 많습니다. 동네 여기저기 맛있다고 달라는 데마다 다 돌려서 주고 나면 정작 가지고 갈 두부밥껍데기는 절반 밖에 안남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서로 나누고 사는 것이 즐겁습니다.
친한 언니들 중에서 제가 제일 막내지만 늘 주방에서 음식을 하는 것은 저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장난삼아 투정도 부려봅니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고 또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한국생활입니다.
가끔은 우리끼리 장난하느라고 미공급에 쌀도 없는데 왜 자꾸 우리 집 와서 밥 먹냐 고 실없는 장난을 합니다. 탈북자 우리들에게는 익숙한 농담이라 배급소에 쌀이 떨어져서 여기서 좀 먹고 가자는 등의 농담을 하지만 한국 태생이나 중국인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소리입니다.
한국은 북한처럼 배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번것 만큼 쌀 가게를 가거나 상점 또는 시장에서 마음대로 골라서 살 수가 있기 때문에 배급이라는 말이 생소하거든요.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우대해서 주던 공급이라는 단어가 사라진지 반 세기나 지났다고 하네요. 그래서 한 번씩 웃으려고 이런 말을 해도 한국 태생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으니 우리처럼 웃지 않습니다.
갓 북한을 나와서 중국에 갔을 때 고모집에서 저녁마다 밥을 먹고 가는 오빠네를 보고 북한이라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고모네 집이 부자라서 오빠네가 매일 저녁을 먹고 간다고 한말이 지금도 형님에게는 상처가 되어서 두고두고 외웁니다.
그 시절을 겪어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새삼 때늦게 실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사람들이 편하다는 것이 이래서 하는 말이겠죠. 가끔 쌀을 나눔 해주는 단체들이 생기면 모두 배급을 받듯이 굳은 얼굴로 경직되어 있는데, 제가 미공급에 배급을 준다해서 왔는데 자루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그래도 줄 거냐고 농담을 하면 그제야 탈북자들이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내일이면 만나는 친구들 생각에 오늘은 많이 들떠있습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거운 것이 만약 통일이 돼서 고향에 간다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괜히 고향 생각을 하면 마음 한켠 어딘가는 아픔도 있고, 미운 정도 남아있고 한없는 그리움도 몰려옵니다.
한밤 자고 나면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겠죠. 오늘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이 우리 앞을 지켜주는 것 같아서 마냥 입가에 웃음이 머물고 기분이 좋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