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유통기한을 모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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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혹시 북한 청취자 여러분은 식품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식품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머리 비누인 샴푸 몸에 바르는 로션 등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아시면 놀라실 테지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만해도 음식을 해서 오래 건사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지요. 물론 말린 나물 같은 경우는 일년씩 건사했다가 겨울이나 다음해 봄에 먹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 형편에 식품류는 과연 그리 오래도록 건사할 수가 있었을까요?

1990년 초에 광복거리 건설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오빠가 러시아식 커다란 베개 빵을 가져온 생각이 납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커다란 빵을 본 것이 너무나 신기했는데 평양에서부터 회령까지 오는 시간이 길다 보니 빵은 이미 옆에 퍼렇게 곰팡이가 끼었죠. 그렇다고 빵을 버릴 수가 없어서 곰팡이 부분을 물로 씻고 빵을 썰어서 증기에 쪄서 먹었답니다.

그랬지만 얼마나 맛있고 신기하던지 지금도 한국에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도 그때 그 맛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친구가 하는 편의점에 놀러 갔다가 차에 커다란 박스를 세 개나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박스 안에는 라면이며 과자며 먹을 것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미안해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가게에서 팔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건데 가져다가 좀 먹어달라고 해서 가져왔는데 괜찮겠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날짜가 이틀, 사흘 정도밖에 안 지났더라고요.

유통기한은 말 그대로 상품을 만들어 원래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기한을 정한 것인데 보통 포장만 뜯지 않으면 지정된 날짜가 지나도 먹고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상점들에서는 유통기간이 지난 상품이 진열대에 있으면 식품 위생과에서 나와서 검사를 하고 벌금을 내게 한답니다. 그리고 소비자가 물건을 사다가 발견해서 고발을 하면 포상금도 주게 되고 또 그런 업체는 대형 상점에서 자기 물건을 팔 수가 없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대형 상점에서는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재고 물건이 대량으로 나오면 보통 봉사차원에서 노인정이나 고아원을 비롯한 곳에 무료로 보내기도 하고 또 사회단체들에서 사용을 하기도 한답니다. 오늘은 남편이 친구 가게에 가서 가져왔는데 탈북민인 우리 친구 중에도 부산의 유명한 해운대 근처에서 편의점을 한답니다. 그 친구도 저한테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이 가득한데 시간이 있으면 와서 좀 가져가라고 하지요.

상품 유통기한은 가게를 운영하거나 식품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요. 그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답니다. 즉석 식품인 김밥, 빵, 샌드위치는 당일 판매기준으로 하고 나머지 라면이나 식재료, 양념, 간장, 된장 등은 유통기한이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가지각각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김치를 비롯한 발효식품은 날짜가 오래 될수록 유산균이 많아지고 몸에 좋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김치조차도 맛이 들 정도로 시큼해지면 매대에서 다 걷어서 폐기 하던가 다른데 보냅니다.

대형상점 이야기를 하니 재미있는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5년 전 러시아에 파견되었다가 1년 만에 도망을 하여 10년을 러시아의 산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한국에 입국한 아저씨가 저희 동네로 오셨답니다. 그때가 마침 추석이었는데 혈혈단신인 아저씨가 한국에 갓 오셔서 적적할까봐 그리고 생활편의시설이 가까운 곳을 알려드린다고 동네 있는 작은 가게에 모시고 갔는데 갑자기 저에게 손전화기를 사달라는 거예요. 왜요? 하니 서울과 경기도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부르겠다고 하시더군요.

아저씨가 하시는 말씀이 우리 친구들이 여기에 이렇게 크고 좋은 상점이 있는 것을 모를 테니 내가 알려주어서 그 친구들이 모두 여기에 왔다 가게 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바람에 저는 너무 웃겨서 가게 입구에 앉아서 배를 그러잡고 웃었답니다. 그리고 너무 웃어서 눈물이 글썽한 채로 이야기 드렸죠. 아저씨, 이 가게는 대형기업에서 연쇄점으로 하는 동네지점이고요. 서울이나 경기도에는 큰 상점과 백화점 그리고 전자상가들, 복합쇼핑몰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커다란 아파트 단지에는 가게가 여기저기 엄청 많다고 알려드렸답니다. 아저씨가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이것도 이리 크고 좋은데 아파트단지 같은 상점들이 있단 말이오? 에이, 거짓말이겠지 하시는 거예요. 북한에서 러시아로 가셨다가 10년을 산속에서만 살았던 아저씨는 15년 전 북한에서 가졌던 생각만 있었고 발전한 한국과 변화된 북한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하셨던 것이죠.

아저씨도 그렇지만 탈북민 저희 모두가 한국에 갓 왔을 때에는 유통기한이 무엇인지, 상점들에 넘쳐나는 상품을 보면서 어떤 것을 구매할지 몰라서 한참씩 고민을 할 때가 많았답니다. 이제는 한국생활 십여 년씩 하면서 양보다는 질 좋은 것을 골라서 구매하고 우유 하나를 살 때도 날짜를 보면서 유통기한이 긴 제품으로 골라잡지요.

가끔은 농담으로 사람도 유통기한이 있냐고 웃으면서 이야기 한답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를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이 선출된 지 일주일을 보내고 나서 한국에는 대통령도 임기 기간이 있는데 북한도 독재자가 유통기한이 다 되어서 빨리 북한주민들이 우리처럼 먹을 것 입을 것을 기왕이면 날짜까지 봐가면서 질 좋은 것으로 골라서 구매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이진서 에디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