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너무 세상이 빨리 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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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국은 얼마 전 꽃샘 추위가 닥친다고 난리여서 베란다에 내놓은 화분이 추위에 얼까봐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날씨가 포근해 안심입니다.

여기 한국은 북한처럼 추운 곳이 아니라서 길에서는 벌써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가끔씩 보입니다. 물론 서울이나 강원도 같은 곳은 아직도 춥지만 제가 사는 남쪽 지방은 한겨울에도 눈을 보기 어렵고 2월이면 매화꽃도 피어나고 3월을 절반이나 보낸 지금은 동백꽃이며 진달래와 목련이 활짝 피어납니다. 제가 살던 회령은 이맘때면 담배모종을 키운다고 온실을 만들고 한창 또 싹이 올라왔겠네요.

오늘 처음으로 생애 한번도 안 가볼 것 같은 곳을 가보았습니다. 셀프 빨래방이라는 곳인데요. [셀프]라는 말은 [자기]라는 뜻으로 [자신이 직접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은 식당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물은 셀프입니다.]라는 말이 있지요.

처음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셀프라는 말을 몰라서 식당에서 접대하는 분에게 “저기요, 셀프 좀 주세요”해서 웃겼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은 셀프입니다]라는 것은 물은 자신이 직접 떠먹으세요. 이런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자기절로 할 수 있는 이런 셀프 빨래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탁기와 건조기 여러개를 구매해서 영업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빨래만 들고 가면 크기에 따라 세탁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빨래의 원단에 따라 온도 선택이 가능한 건조기에 빨래를 넣어 바로 말릴 수도 있네요.

저 역시 늘 집에서만 빨래를 해오던 터라 이런 빨래방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세제며 섬유 유연제는 따로 구매해야 될 것 같아서 집에서 모두 준비하고 갔지만 세탁기 사용금액 안에 모두 포함 돼있고 세탁기 작동 시 자동으로 모두 투입이 되는 터라 따로 집에서 빨래 비누인 세제를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간 빨래는 침대요인데요. 1인용 침대 요가 아니고 2인용 침대요라 집에서 세탁하기엔 너무 커서 대형 기계가 있는 빨래방에 들고 갔지요. 그런데 용량이 큰 세탁기에 넣어야 되는 빨래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아차, 딴 생각하면서 실수로 작은 용량 기계에 넣었네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그래도 세탁기가 과부하를 받지 않고 잘 돌아갔습니다.

30분정도 빨래가 되기를 기다려서 건조를 시켰네요. 건조기에도 동전을 넣으면 뜨거운 바람이 나와 빨래를 말려주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자판기가 있어서 커피도 동전을 넣으면 나오고, 음료수도 사먹을 수가 있고 심지어 화장실에는 여성 생리대까지도 자판기에서 판매를 하는데 세탁기 같은 전자기기도 동전을 넣어야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습니다.

한국이 전자통신과 전자기기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기계가 돈을 안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 또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생각을 새삼 해봅니다.

오늘 셀프 빨래방을 사용해보고 신기하기도 하고 바보같기도 한 제가 스스로 어이가 없어서 친구에게 얘기를 했더니 이런 당황스런 경험을 한 것이 저뿐이 아닙니다. 그리고 탈북자여서 모르는 것도 아니었군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따라가기 힘든가 봅니다.

처음에 버스를 타면서 버스표 요금을 내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허둥대니 기사님이 아줌마, 그 아래에 기계에 카드를 대요 라고 해서 무안했는데 뒤따라 차를 탄 사람도 나처럼 교통카드를 어디에 대야 하는지 사용법을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던 적도 있습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몇년만 지나도 모습이 변해 놀라게 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도 한동안 안다닌 곳은 어떻게 변했는지 길을 알려주는 장치인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찾아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갓 온 탈북민들이 사회에 정착해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배워야 하고, 무엇이든 물어봐야 합니다. 심지어 집안에서 취미로 키우는 화분이나 물고기도 다 알아야만 키웁니다.

그런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는 인터넷에 들어가서 질문을 하면 답을 다 알려줍니다. 그리고 먼저 해본 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올린 글들을 보고 따라 하면서 지식을 쌓아갑니다.

얼마전 개학을 한 손녀가 학교에서 봉사위원이 되었다고 자랑을 합니다. 봉사위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예전에 우리가 학급반장과 학급위원을 비롯한 간부들을 말하는 거라고 하네요. 하필이면 봉사위원이냐고 했는데 아마도 반장, 부반장 등으로 나누면 차별을 한다고 하는데 저도 이젠 예전 사람인가 봅니다. 아이들에게 지도력을 갖추게 하는데 왜 그것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하면서 저 혼자만의 불만을 가집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하고, 생활이 바뀌는 것은 따라 못가면 물어보고 배우면 되지만 아이들의 문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 아이들과의 소통이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 때는 말이야,” 하면 “라떼는 말이야” 라는 식으로 놀림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입니다.

산천초목도 그대로이고 봄꽃도 그대로 우리를 반기건만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는 노력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내 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변화가 내 고향 북한에도 하루속히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