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느덧 3월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3월은 활짝 피어난 꽃들의 축제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해군기지도 있는데 그곳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서 벚꽃 축제가 한창입니다. 전국적으로 자기들 지역을 알리기 위해 꽃과 식물의 이름을 빌어서 축제를 진행합니다. 그렇게 축제가 열리는 곳애는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주말을 이용해서 꼭 다녀오려고도 하지만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르신들도 자녀들의 손에 이끌리어 나오시는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얼마전 동네 탈북민 언니하고 점심을 먹고, 언니 밭에 가서 시금치도 캐오고 밭도 한번 둘러보려고 하는데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사시는 어머니가 오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신 분이라면 친구라도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신 분들은 친구들이 없어서 엄청 적적해들 하십니다. 그래서 언니네 어머니는 버스를 두번 세번 갈아타고서라도 자녀들 집으로 오십니다.
얼마 전에도 작은 딸 집으로 아무 말도 없이 다녀가셔서 동네에서 돌봐드리려 오신 분이 할머니가 사라졌다고 난리가 났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이런 어르신들을 사회복지기관에서 요양보호사를 파견하여 돌봄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어르신이 사라지면 바로 가족에게 연락이 옵니다.
오늘은 다행이 어머니가 큰 딸 집으로 오셔서 우리가 바람쐴겸 밭에 가는 곳에 모시고 가기로 했지요. 겨우내 얼지 않고 잘 자라준 시금치를 뽑으면 어머니는 가만있지 않고 앉아서 하나하나 손질해주십니다. 그 모습을 보느라니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제작한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본 생각이 납니다.
90세가 넘으신 연세에도 자녀들의 일손을 돕느라고 애를 쓰시고 자녀들은 노년에도 일하시는 어머니를 일하지 말라고 실랑이를 벌리는 모습이었는데 어쩌면 한평생을 일로 늙으신 어머니에게는 자녀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으실테죠.
밭일을 마치고 저녁은 식구들에게 돼지고기를 구워주려고 상점에 가야 하는데 언니와 언니 어머니와 함께 갔습니다. 가는 길에 피어난 꽃이며 또 상점에 상품을 둘러보시며 어머니는 연신 이 좋은 것들을 채 못보고 죽으려니 너무 슬프다고 하십니다.
한국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엘리베이터는 아파트마다 있는 터라 늘 타보시지만 경사진채 천천히 바닦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무빙워크라는 것은 자주 못타보는 지라 신기해하십니다. 상점마다 있는 살 상품을 담고 끌수 있는 구르마(밀차) 같은 카트 손잡이를 어머니보고 잡으라고 하시니 실눈을 지으시면서 너무 즐거워하시네요.
다리가 아프시다고 의자에 앉아서 사람구경을 하시겠다는 어머니를 의자에 앉혀놓고 우리끼리 마저 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언니가 늘 우리끼리 장을 보던 생각을 하고 자기 어머니를 미처 생각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 가길래 언니, 엄마는? 했더니 언니가 어머나 엄마가 계셨네 합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상점이라는 생각도 잊고 아줌마 둘이서 배를 잡고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찔끔 솟고 얼굴 관절이 아플 정도입니다.
옛말에 굶고 있는 식구 입을 하나 줄인다고 늙은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이란 것이 있었다고 하죠? 지금은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어르신들이 요양원에 가시는 것을 고려장을 당하는 만큼 거부를 하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발로 걸으시는 순간만큼은 자기 집에서 살다가 눈을 감으시려고 하십니다.
어쨌던 생각지 않게 어머니를 두고 갈뻔 하고 눈물나게 웃기는 했지만 일찍 부모님을 여읜 저로서는 언니가 부럽고 88세까지 자녀들 집으로 찾아오시는 어머니가 부럽기만 합니다.
아마도 40대 중반에 눈을 감으신 내 엄마도 살아계시면 언니네 엄마 만큼 연세가 되실 겁니다.
언니 어머니는 제주도도 다섯 번이나 놀러 가보셨고, 태국, 베트남 등에도 자녀들이 보내서 다녀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좋은 것을 미처 다 못보고 가시게 생겼다고 저한테 한탄을 합니다. 이제는 지팡이를 집고 다니시는 어머니가 어디를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겠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볼 것도 많고, 누릴 것도 많은 이 세상을 더 많이 누리고 싶으십니다.
언니는 어머니가 이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냐고 어머니가 요구하면 다 들어주십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한국에서 사시면서 자녀들에게 돈을 달라는 말은 잘 안하신다는군요. 나이가 드시면 국가에서 노령연금이 나오기에 그 돈에 맞춰서 살아가십니다.
또 국군포로였던 남편의 명의로 나오는 연금도 받으시고 병원을 가도 노인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받습니다.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하마터면 엄마를 두고 집 갈뻔 했다고 하니 어머니도 눈이 없어지게 웃으시더니 난 너를 한시도 안잊는데 너는 벌써 나를 잊었다냐 하시는 데 말 속에 서운함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딸도 일하고 바쁜 중이라 잠깐은 잊었을지언정 언제한번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법이 없는 그런 착한 딸인 줄을 어머니도 다는 헤아리지 못하시는가 봅니다.
엄마, 어디를 가면 간다고 이야기 하셔요. 안그럼 딸이 엄마를 잊어버리면 울어요 하고 말하는 나에게 심심해서 여기저기 다닌다고 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북한이라면 88세까지 이렇게 장수하실 수 있을까? 새삼 생각해봅니다. 탈북하신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북녘의 모든 어머니들이 무병장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