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탈북자들이 대한민국 법정에 서게 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법치 국가에서는 공공의 안전을 위해 국가에서 정한 법을 어기게 되면 가볍게는 벌금형에서 신체 구금형까지 법이 정한 규제를 받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은 적법한 법 절차에 의해 진행이 되는데요. 이번에 여러명의 탈북민이 한 사건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시작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2019년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민 모자가 아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이 문을 따고 들어가보니 여성과 4살 된 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고 세상을 크게 놀라게 했는데요. 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가 하고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사망자가 탈북민이어서 우리 탈북민들이 더 관심을 갖고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진실 확인을 원했던 겁니다.
변을 당한 당사자는 홀로 남한 생활을 시작해 가족이 없었고 피붙이 아이마저 세상을 떠났으니 탈북민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여름 서울 광화문 시내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정부가 책임 있는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같이 탈북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망원인이 먹을 것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면서 처리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한에는 베트남이나 태국 등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고 또 한국말을 하지만 국적이 다른 중국 조선족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들은 남한 입국과 동시에 한국 국적을 갖게 되고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과 똑 같은 신분 지위를 받지만 체제가 다른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남한생활에 적응기간을 갖게 됩니다.
물론 정부의 탈북민 특별 지원으로 병원 이용이나 학자금 지원 등 여러 혜택을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에 뿌리 내리고 정착하는 사람도 많지만 혼자 입국해 남한 생활을 하는 경우 특히 탈북과 제3국을 거치는 동안 건강을 헤쳐 몸이 아픈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 여성의 경우는 탈북해서 중국에서 숨어 살면서 정신적인 고통을 많이 받게 되고 그 심리적 충격은 남한생활에서도 이어져 정상 생활을 되찾는데 누군가의 도움이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이번 비극은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이 자기 가족의 일처럼 흥분을 하고 정부에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모인 탈북민들은 광화문 분향소에서 이러한 탈북민의 사연을 알리려는 일을 했고 수 많은 거리 행인들이 우리의 사연을 듣고 눈물 흘리고 응원을 해주며 같이 슬퍼했습니다.
일부 시위에 참석한 탈북민은 흥분해서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까지 행진을 해 가서는 탈북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했고 급기야 길을 막는 경찰들과 충돌하게 됐습니다. 탈북민들의 흥분은 점차 극에 달했고 더 이상 접근을 못하게 설치해 놓은 장애물을 누군가의 넘어가자는 외침과 함께 너도나도 넘어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시간이 지나 탈북민들은 분향소를 해체하고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열심히 살았지요.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15명의 탈북민들에게 중앙지방 법원에서 공소장이 날아왔습니다.
저도 분향소에서 마이크를 잡고 방송차를 타고 갔다가 모두가 울타리를 넘는 광경을 보고 뒤를 따라 함께 넘었다가 재판에 회부되었답니다. 우리가 막대기를 휘두르고 경찰을 향해서 폭력을 휘둘렀다는 공소 사실을 부인하게 되면서 판사님이 검사에게 다시금 사건을 검토하고 수정을 지시하게 되었고, 이 사건은 3개월 뒤로 재판이 연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저는 북한에서의 법정을 떠올리게 됩니다. 북한은 법정까지 가는 일은 드물지만 어쩌다 법적인 절차를 받게 되면 피고인의 발언은 효력을 볼 수가 없을뿐더러 변호사마저도 판사의 요구에 맞게 변호를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게 되지요.
재판 말미에 발언권을 얻어서 우리의 심정을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당시 경찰과의 충돌은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저지선을 넘게 되었고 울타리를 넘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개중에는 밀려서 넘어온 사람과 울타리가 짬이 생기면서 밀려서 들어온 사람도 있더라 등의 이야기와 함께 3년 동안 아무 소식이 없다가 이제는 사회에 적응해서 살고 있는데 아픔을 들춰내서 지금 재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자리는 자영업을 하면서 여기에 출석을 하기 위해 가게 문을 닫고 온 사람도, 회사에 연차를 내고 온 사람들도 있다. 나처럼 장거리를 시간을 내어서 오면서 시간과 차비를 써가며 출석한 사람도 있다. 우리의 상황을 잘 혜량하여 선처를 부탁 드린다는 등의 이야기로 끝을 냈습니다.
과연 우리가 북한에서 산다면, 북한의 법정이라면 감히 이런 발언을 할 수가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의 법정이기에 자신에 대한 변론과 반론도 할 수가 있고 또 자신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발언을 하고 책임을 지려는 노력이라도 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피고인의 신변과 안전도 보호하지만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도 한답니다. 이것이 북한과 남한의 다른 점이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큰 차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러 경험들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이진서 에디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