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통일의 천리길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서울이며 인천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데요. 천리길도 한걸음에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탈북민들에게는 천리길 하면 “배움의 천리길” 또는 “광복의 천리길”을 생각하지요. 우리나라 한반도가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사는 부산-경남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350여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아마도 강원도 철원지역까지 가면 400킬로미터가 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에서 400키로미터의 거리를 가자면 몇 날 며칠이 걸려야 될까 싶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북한에서 웃겼던 이야기를 잠깐 올려봅니다. 황해도에서 살던 아주머니가 저의 동네로 시집을 왔는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못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당시 북한은 전화도 통하지 않고 또 편지가 오고 가는 데만도 한 달씩 걸리던 때라 소식을 늦게 받고 장례식도 못 가고 고향을 떠나온 지 30여년이 다되어간다고 늘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런 아주머니에게 조카가 놀러 떠났다고 합니다.

황해도의 심심두메산골에서 떠나는 조카는 입쌀배낭을 메고 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차에 오르면서 서로 오르겠다고 난리 치는 사람들 속에서 가슴에 넣었던 전표며 돈을 모두 도둑을 맞았답니다. 그러면서 겨우 오른 차 안이지만 기차가 굴 안을 지나가면서 가지고 떠났던 쌀 배낭마저 도둑을 맞았죠. 고생 고생해서 빈 몸으로 이모 집에 도착한 조카는 얼이 빠진 채 하는 말이 “이모, 기차 안에도 변소가 있더라” 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옛말입니다. 제가 살던 회령에서 청진으로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하루 이틀씩 시간이 걸려야 다닐 수 있었고 백리 길을 걷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가 있었지요. 그런 북한이라면 400여리가 되는 길을 당일에 왕복으로 다닌다면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고속열차는 최고 시속이 300킬로입니다. 그 속도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지요. 남쪽 항구도시 부산에 사는 사람도 한국의 수도 서울에 가서 일을 보고 돌아와 저녁에는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답니다. 또 북한처럼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랍니다.

서울을 갔다가 다음날에는 인천으로 갈 일이 있어서 1박2일로 볼일을 보고 왔습니다. 그랬더니 김포에 사는 동생한테 전화가 와서는 자기 집에 들리지 않았다고 난리를 치네요.

녹취 : 아니, 세상에 김포하고 인천하고 거리가 안 멀다고… 여기서 논현에서 가는 버스가 있으니까…

우리가 북한에 살 때는 누가 올세라 그것이 걱정스러웠는데 한국에 와서 살다 보니 인연이 그립고 지인이 사는 곳을 지나치면 왜 그냥 갔냐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밥 시간에 사람이 들어오면 “밥 먹고 왔겠지?”가 인사였다면 한국에서는 맛있는 밥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서울로 그리고 인천으로 돌아서 집에 오면서 아직 내가 북한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빨리 통일이 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 남한에 사는 탈북민 중에는 차를 북한 식으로 이야기하면 지프차처럼 큰 차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유는 북한의 비포장 도로를 달릴 수 있는 크고 든든한 차를 항상 준비했다가 통일되면 뒤에 짐을 한가득 싣고 고향으로 가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국의 도로는 길 포장도 잘돼 있고 사방팔방으로 연결도 잘돼 있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차로 달려 5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여기는 중부 고속도로, 경부 고속도로가 있고 중간에 남해에서 시작되는 남해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은 고속도로가 큰 동맥처럼 뻗어있고 실핏줄처럼 국도가 연결되어 있답니다. 이런 길도 명절이면 차로 꽉 막혀서 5시간이면 능히 갈 수 있는 길도 십 여 시간이 넘게 걸릴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지만 그곳에 살 때 강냉이 배낭에 술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아보겠다고 어깨 무겁게 술통을 메고 백리 길을 걷던 생각이 납니다. 종아리 근육은 굳어져서 딴딴해졌고 발은 이미 부르트고 눈앞에 저 멀리 집은 보이는데 옮겨 디뎌야 하는 발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 집을 바라보면서 한 시간 넘게 걸어가던 그때 그 순간들이 한 번씩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살면서 한 번씩 먼 길을 당일로 오고 갈 때면 지금도 고향에서 힘들게 기차를 잡아타고, 자동차를 얻어 타고 생계유지를 위해 뛰어야 하는 우리 부모형제의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집니다. 그 길에서 다리 잃고 목숨 잃은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을 합니다.

한국생활 십여 년 넘으면서 탈북민들은 자기 차를 가지고 전국 어디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다닙니다. 가끔은 이것이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북한이라면 내 차를 가진다는 것은 꿈엔들 생각을 못했을 테니깐요. 그리고 통일이 되면 고향의 가족들에게 무엇부터 가져다 줄 것인지 생각하면서 크고 좋은 차들을 마련해서 가족들 만날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오늘 서울과 인천을 다녀온 이야기를 했는데 이 방송은 통일되어 판문점을 넘어 개성까지 그리고 고향인 회령까지 이어져 다녀오는 방송이 되어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진행 김태희, 이진서 에디터, 웹 담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