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요즘은 하던 일들을 다 내려놓고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을 위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과 함께 바람 쐬러도 다니고 서로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다닙니다. 오늘은 그런 껌딱지 언니와 함께 장보러 갔습니다.
가정집마다 문손잡이에 걸어놓은 전단지에는 어느날에 어느 상품을 원가보다 싸게 판다고 적어놨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한국 돈으로 2천 원이나 싸게 판다는 전복을 사러 대형식료품점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싸게 살때 전복을 여러마리 구매해서 장조림을 해먹는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가는 길이 멀지도 않은 데 가다 보니 신호등이 여러개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앞에는 예전에는 30킬로 이내로 속도를 줄여야 했는데 오늘 보니 40킬로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게 상향조정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학교 앞은 아이들이 어느 순간에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바닥에도 빨간색을 칠해놓고 커다란 글씨고 지켜야 할 속도를 적어놨습니다.
한국은 북한과 다르게 시골도 모두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고, 농사를 짓기 위해 소형 뜨락도르인 경운기가 다니는 길도 다 포장이 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농촌에도 마을버스가 다니기에 그런 길에도 신호등이 있고, 바닥에는 운전자가 준수해야 할 속도제한 표시를 해놓는 것이지요.
가끔가다가 뉴스를 통해 북한의 이모저모를 다룬 방송을 봅니다. 제가 있을 때나 20여 년이 훌쩍 지나서 30여 년이 다 되어 오는 오늘이나 북한의 도로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휑하니 비어있고 자가용이나 멋진 차 대신 소달구지나 사람들이 밀고 다니는 수레만 보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학교로 오고가느라면 큰 길로 다녔는데 학교로 오가는 아침이나 점심 시간이면 길에 학생들로 가득했지요. 그런 길에 어쩌다 차가 지나가려면 경적소리를 빵빵 내야 되었고, 차가 지나간 뒤로는 뽀얀 먼지가 한가득 날렸습니다.
신호등은 청진을 비롯한 곳에 교통안전원이 서서 수신호를 하고 한국처럼 전기가 들어오는 신호등은 생각도 못해봤지요.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은 길이 파여서 울퉁불퉁한데 물이 고이면 차가 지나가면서 물을 뿌리면 교복이 흙진탕 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한국도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는 않지만 가끔가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제는 세탁비를 물어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학교 선생을 하던 분의 아들이 먼 거리에서 자기 아버지를 발견하고 소리치면서 달려가다가 미처 보지 못하고 차에 치어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신호가 없어서 어디서 길을 건너야 하는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면 한국은 유치원때부터 교통신호를 지키는 법을 가르켜줍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작기 때문에 신호를 건널 때에는 손을 번쩍 들고 건너고, 야간에는 밝은 옷을 입으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등하교 할때에는 교통사고를 줄이려고 가방에 형광색이 나는 가방 덮개를 씌우게 합니다.
오늘도 손녀딸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알림이 옵니다. 예전에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지금은 휴대폰 문자로 아이들이 지켜야 할 것들,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오네요. 거기에는 매일 차 조심하고, 신호를 잘 지키라고 주의를 줍니다.
처음에 탈북민들이 한국에 왔을 때는 북한과 중국에서 살던 버릇이 남아서 교통신호를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도보로도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교통경찰이 단속을 하는데 능청스러운 탈북민이 북한에서는 신호가 없어서 잘 몰랐다고 했다네요.
그래서 빨간 불인데 건너면 어쩌냐고 하니 빨간 불이라서 빨리 건너라는 줄 알았다는 황당한 답변을 해서 어이없는 경찰이 주의만 주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몰라서가 아니고 그만큼 신호를 지키는 것이 몸에 배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면허증이 없이도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던 습관이 붙어서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고 단속에 걸려서 벌금을 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은 오토바이도 면허를 따서 타야 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첫해에 담당 경찰서에서 추천해주어서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도전해서 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오토바이를 탈수 있지만 운전면허증을 따기 전에는 오토바이 운전면허를 따로 따놔야 합니다.
저는 중국에서도 오토바이를 탄 경험이 있어서 한국에서 오토바이 운전면허증을 따고 한동안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도 했지요. 자전거도 마음대로 탈수 없는 북한에서라면 생각도 못 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요즘은 한가지가 더 늘어나서 우회전하는 차량도 일단 멈춤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제는 단속이 들어갔다고 뉴스에도 나오는 군요. 살아가면서 이래저래 지켜야 할 것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약속과 신호인 것 같습니다. 나 한사람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줄 영향이 작지 않기 때문이겠죠. 지금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저멀리 보이는 곳을 바라보니 신호등이 깜박입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모든 것에 신호가 있어서 잘 지키고 살아가라는 메시지인듯 싶기도 합니다.
녹색, 황색, 적색 세가지 색깔로 바뀌는 저 신호등을 잘 지키고 살면 우리네 인생도 여유롭고 교통사고가 날 일이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오늘도 내가 살았던 북한의 어느 한 길거리를 그려봅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