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이 끝났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확실하지 않았고 북한의 인권 특히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인간의 존엄이 말살되고 생존마져 위협받는상황에 대한 얘기는 없었지만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탈북자 단어를 거론 했는데요,
탈북자 얘기를 한 것은 탈북자 문제가 북한의 인권문제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로 나오잖아요
여성시대 오늘 이시간에는 북한 보안서에서 근무했던 김시연 씨와 중국에서 인신 매매를 당했던 탈북민 가명의 김선교씨와 함께 합니다.
음악:
김시연 씨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그래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아주 외면 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군요
김: 탈북자들 실향민들 그리고 연평도 주민들이 북한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것 같고이번 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있을것이라며 그 사람들의 소망에 부합되는 결과를 도출해 내야 되지 않겠나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로 나오니까 원래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탈북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데 그런데 이번에 먼저 얘기를 꺼냈을때는 김정은이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방관하고 있지 않다,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를 두기 위해 탈북자 얘기를 꺼내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미국 아틀란타에 정착한 탈북여성 가명의 김선교 씨는 중국 국경을 넘은 것은 돈을 벌어 곧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는데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신매매를 당해 그 비참함과 아픔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지울수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 내가 꼽추 총각에게 팔려가서 한번 잤는데 애기가 생긴거에요 저는 죽으려고 했어요 희망이 없는거에요
지금도 이런일은 계속되고 있다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북한같은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북한에서 유치원 교사 생활을 했던 김선교 씨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국가에서 배급이 완전히 끊기자 교사들이 장사를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장사 자본을 만들기 위해 북한을 떠났다는데요,
선교: 1999년도 겨울방학 이었어요 12월에 교사들도 장사를 해도된다고 해서 그때는 국가에서 개인 돈을 허용을 하지 않으니까 자본주의 날라리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그래서 교사들은 장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가 어느날 교사들도 장사를 해야된다고 해서 장사를 하려니까 돈이 없는거에요 본전이 없는거죠 그래서 중국에 가서 한 달만 벌어가지고 오자 그랬는데 제가 잘 아는 친구가, 그 친구가 오면 밥도 해주고 온갖 맛있는 것을 다 해 주었는데 그 친구가 어떻게 감히 나를 팔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되어요
그때 당시 선교 씨는 친구에 의해서 팔려간 것 조차도 모르고 있다 후에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김: 저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어요 나 팔렸느냐고 250위안에 팔렸던 것 같아요
북한의 친구가 중국 아저씨한테 자신을 판 사실도 모르고 그 아저씨를 따라 다니다가 어느 과수원 한 곳에 갇히게 되었다는데요, 김 선교 씨를 팔려고 사람을 찾고 있었던 거죠.
김: 그 중국아저씨가 이제 부터 내말 대로 해야 된다고 그러면서 과수원 같은데다 구속해 놓더라고요 문을 걸어 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나를 데리러 누가 왔대요 그래서 그분을 살살 꼬셨어요 제가 돌아가야 된다고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나는 막둥이고 우리식구를 먹여 살려야 된다고 그랬더니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알았다고 그러면서 자기 누나가 연길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당신은 나를 얼마에 샀느냐 물어보았더니 500위안 주고 샀데요 배로 부친거죠
자신은 250위안에 팔린것으로 알았는데 이 사람은 500위안에 샀다며 값을 배로 올렸습니다. 김선교 씨는 중국에 가서 잠시 돈을 벌어 온다는 생각만 했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는 꿈에도 생각을 못 할 정도로 물정이 어두웠다고 하는군요
김: 우리 사람들은 순박해서 잡힌 곳에서 도망칠 생각을 못했어요 잡혀서 도망친 사람도 많았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어요 시키는데로 여기 있어라 하면 갇혀 있고 밥 주면 먹고 그러고 있었어요
그는 자신을 팔려는 조선족 아저씨에게 여기서는 한달만 있다가 가야 된다는 사정을 말하면서 그 아저씨가 마침 안도 교회 집사 아들이라는 신분을 믿고 돈을 벌어 자신의 몸값 500 위안을 먼저 갚겠다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김: 제가 연길에서 한달만 일하다 돈 벌어서 나는 가야 한다 나 는교사다 나는 가서 일하고 우리 식구먹여 살려야 한다 그러니까 알았데요 그러면서 한달에 500위안 하는데 나는 신분이 없으니까 뒷 수습하는것 그릇 씻어 놓고 설거지 하면 500위안을 번데요, 그래서 당신이 나를 500위안에 샀으니까 그 돈을 내가 줄게 그랬어요, 한달치 먼저 네가 갖고 한달치는 벌어서 내가 집으로 가지고 간다고, 그 사람이 안도 교회 집사님 아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그렇게 할 줄 알았어요
그때가 12월이었는데 식당에서 지금 일하고 있는 사람이 집으로 설을 쇠러 갈때 그 자리로 들어가 일 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 집사를 따라 나섰습니다.
김: 자기 집이 안도였는데 그곳으로 데리고 가더라고요 조선족이었어요 안도교회 집사님아들 ,그래서 그때 교회를 한번 가보았어요 거기서 예배를 드리는데 나를 데리고 가더라고요 하지만 그사람은 사람을 인신매매 하면서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 부인이 저 사람을 왜 집에 두고 있느냐 저사람 좋아하느냐고, 아무 상관이 없는데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념 밖에 없는데 그리고 제가 그 사람한데 저를 못 건드리게 했어요 너 나를 건드리면 죽어 버린다고 하니까 안 건드리더라고요 나는 거기서 시집 안갔고 부인도 있잖아요 애도 있고...
눈 앞에 이 집사의 부인도 있고 자녀도 있는데 이상한 오해를 받는 것이 너무 싫어 진정으로 양심에 호소를 했다는군요
김: 애 앞에서 부끄럽지 않느냐, 어떻게 양심없이 숨을 쉬고 살 수 있겠느냐, 하늘을 어떻게 바라 보겠느냐고 하면서 집사님의 아들이니까 양심의 소리를 했어요 그런데 부인에 저를 팔라고 안팔면 안된다 나도 못살겠다고 하니까 그사람이 견디다 못해, 그것도 수작인지 모르지만 나를 지금 어떤 중국사람한테 팔아야 한데요 내가 팔면 그집에서 도망쳐 나오라고 그러면 내가 너를 받아줄께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그 부인이 너무 난리를 치며 나를 산 돈을 뽑아야 한다고 해서 알았다하고 갔어요
이 집사를 따라 가보니 김선교 씨보다 어린, 장애를 가진 총각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데 이 장애인에게 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김: 장가를 못간 어떤 곱추아저씨가 나보다 5살 어린 한족 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집은 경찰 소속 으로 배경이 좋은집 이었어요 중국에서 모택동이 정권을 잡았을때 집단화를 하면서 애를 돌 볼 수 없어 방치를 했는데 애가 개구리잡이를 하다가 수렁텅에 빠져 거기에 하루 종일이나 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거에요. 부모님들은 집단 되어 있으니까 집에 오지 못하고 공동생활을 한거죠. 그런데 청소년 시절까지 괜찮았는데 17살 되면서 곱추가 된거에요 그러니까 자폐증 환자 같았어요 사람들과 얘기도 안하고 이런 사람에게 나를 데리고 갔어요. 거기서 나를 가두어 놓은 거에요 도망칠까봐
김선교씨는 도망을 치려는 낌새를 알고 일상생활을 제한 시키면서 협박까지 하더라는 겁니다.
김: 화장실도 잘 안보내고 한 석달을 그러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갇혀 있던 집 앞이 마침 파출소였어요 파출소에서 발돋음을 하면 우리 마당이 다 보여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보여요 그러니까 그집은 파출소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으로 나를 위협하면서 너 나가면 잡힌다 죽는다 그러니까 나는 바보처럼 ..제가 이렇게 끌려왔잖아요
그 집에서는 담장밑에 개 굴처럼 만들어놓고 그 밑에서 살게 했다는데요, 당시의 기억은 다행스럽게 교회에 나가 예수믿고 나서 부터 거의 잊혀졌다고 말합니다.
김: 앉지도 못하고 거기서 나는 밥을 어떻게 먹었고 잠을 어떻게 잤으면 화장실을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아픈 기억들은 하나님께서 다 지워주셨어요
하지만 팔려간 집에서 5살이나 어린 장애 남자와 한번 잠자리를 했는데 애기가 생겨 오도가도 못하고 정말 죽고 싶었다고 당시 상황을 들려 줍니다.
감: 그집에 팔려가서 제가 아가씨였잖아요, 결혼을 못한 30살이었는데 그런데 한번 잤는데 애기가 생긴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내가 강간범 하고 하루자고 애기가 생겼는데 너하고 내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 저는 죽으려고 했어요 희망이 없는거에요 내가 집에 돈도 못보내고 그렇다고 돌아가면 탈북자로 간첩이 되고 제가 그런 경향을 많이 보았어요
북한에서 살때 이런 일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분명 자신도 같은일을 당 할 일이너무 두려웠다고 말합니다.
김: 한 조선족 아저씨가 일을 많이 해서 북한에 있는 사람에게 천 달러를 보냈는데 그 돈을 받은 가족인 아저씨가 간첩으로 몰려 총살을 당했고, 그리고 또 우리동네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날 덮쳐가지고 그 돈을 몽땅 몰수해요 그리고 그 사람은 매장시키고 그런 일을 너무 많이 보았기때문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갇힌 삶을 살다가 애기를 낳고 나서 밖으로 나왔어요
여성시대, 다음 시간에 김선교 씨가 어떻게 미국으로 와서 정착하게 된 과정을 전해드립니다.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