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고난의 행군 다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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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1년중 5월은 춥거나 덥지않고 활동하기 좋은 계절에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생명이 약동한다는 의미로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생활이 어렵고 힘들면 아름다운 계절도 느낄 새 없이 지나 갑니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게 지나고 있는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북한 주민들은 물론 탈북민들도 잊을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을 떠올린다고 하는데요,

김: 저희가 1990년도에 들어서면서 94년에 김일성이 죽고 북한이 더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런데 사실은 80년대 부터 어려운 시기라고 얘기 할 수 있어요

여성시대, 다시 이어지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자유와 인권을 위한 탈북민 연대 김태희 대표와 함께 합니다.

음악:

북한 김정은 총비서가 최근 '고난의 행군'을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지난 고난의 시기를 다 잊고 털어 버릴 만도 한데 아직도 진행중 이라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김: 80년대 중반 후반 부터 광산 탄광 지역이 제일 어려웠거든요. 제가 80년도 후반기에 탄광 쪽에 있는 언니 한테 가서 생활을 했거든요, 그때는 벌써 탄광지역에는 식량난이 와서 와이프,부인들이 아이들을 빈집에 두고 행낭 베낭을 메고 다니면서 남편들이 탄광에서 받아 온 비누나 기름, 설탕 등을가지고 강냉이나 입쌀로 바꾸어 오는 거에요

배급 쌀은 적은데 아이들은 많고, 당시 북한은 배급을 주었지만 배급 눈, 즉 배급표가 있었다는데요,

김: 갓난아이는 하루 300그램, 초등학교 올라가면 400그람, 중학교 올라가면 600그람, 성인이 되면 700그람, 탄광 광산 노동자는 900그람, 그리고 엄마들 같은 경우는 주된 일을 못하는 부양가족이라고 해서 부양 가족들도 부대일을 하면서 하루에 식량 400 그람씩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먹고 사는 식량이 흔하니까 입쌀을 400그람 먹으면 괜찮겠다고 하겠지만…

북한은 부식이 없어 거의 밥만 먹기 때문에 쉽게 배고픔을 느낀다고 지적합니다. 배급 중에 설탕이 나올때는 강냉이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 : 북한은 기름이 없고 돼지고기도 없는 데서 순 쌀 400그람을 먹는다면 상당히 배고프거든요 또 이런 쌀을 바싹 말려서 주는 것이 아니고 수분이 있고 그리고 강냉이 몇 프로 해서 3:7로 하게 되면 강냉이가 7이고 입쌀이 3인데 그런데 강냉이를 타갠 강냉이 쌀을 주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껍질 나가고 눈이 나가면, 한 10%정도는 빠져나가요 그런데 이것을 먹노라면 부인들은 아이들이 배가 고프니까 조금이라도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설탕같은 것은 먹어 보았자 배 부른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 설탕을 가지고 농촌에 가서 강냉이나 입쌀과 바꾸어와서 아이들을 키우고 그랬었거든요

당시 북한은 배급을 주면서 국가에 충성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군요

김: 저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 당시 배급을 충성의 나라 미요, 뭐 이런 명목을 지어 가면서 배급에서 눈을 짤랐거든요, 나라 사정이 풍부하고 식량사정이 원만하다면 눈 안잘라요. 더 주죠,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런데 눈을 잘랐단 말이죠 그때 부터 식량난이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그렇게 봐요 경제학자들도 그렇게 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광산에는 젊은 재대군인 들이 많았는다고 전합니다.

김: 북한은 군인들이 27 살 28살, 거의 30살이 되면 제대를 하는데 그 재대 되는 군인들을 탄광 광산이나 농촌에다 집단 무리배치를 했거든요, 무리배치를 해서 결혼을 해 가다 보니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집체적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어요,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와이프, 부인들은 거기에 갔다가 행랑 짐을 들고, 그러다 보니까 저희 언니도 같은 갈등을 겪었죠. 그러면서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고 빈집에서 사고가 나서 죽고 도둑이 빈번하고, 살인이 일어나고 80년대 중반부터 탄광 광산에서 굉장히 심했습니다. 그러다가 90년이 되면서 부터 점점 식량난이 심해졌는데 94년도에 김일성이 죽은 겁니다. 김일성이 왜 죽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김: 대표의 말대로 북한 주민들 중에 김일성 사망을 둘러싼 북한 전문가들이나 정보 소식통들의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는 겁니다. 보도에 따르면 고위직에 있던 탈북자들이 전한 김일성 심장 주치의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의 죽음을 유도, 방치했다는데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군요

김: 사실은 이에 대해 당시 국가의 경제난에 대한 그 어떤 스트레스나, 화로 인한 뇌경색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는거죠

김일성 죽음은 김일성 주치의의 해임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유력한데, 결국 김일성 죽음에는 아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의도적인 개입'을 했다는 얘기도 돌았는데 김일성 주치의의 해임 사실이 이번에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짐으로써 결국 김일성 죽음에는 아들 김정일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의도적인 개입'을 했다는 그동안의 방증이 사실이 된 셈 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꽃제비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돌았다는데요,

김: 북한에 꽃제비 들이 늘어났는데 그 많아진 원인이 있다는데요,김일성이 94년도에 죽으면서 우리가 3년 동안 애도 기간이라고 했거든요

애도 기간에는 주민 들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들어보죠

김: 아침부터 꽃을 꺾어다 바치면서 우리가 나가서 일하는 것보다도 김일성의 무덤에 가서 동상을 쓸며 울고 통곡하고 이런 시간이 더 많았어요, 그리고 김일성의 시체를 미라로 만든다고 엄청난 돈을 투자 했거든요, 그 돈은 북한 주민들이 3년을 먹고 살수 있는 돈으로 김일성의 미라를 만든 겁니다.

당시의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의 미라를 만든 후 부터 경제가 겉잡을 수 없이 바닥을 쳤다고 전합니다.

김: 김일성이 죽자 그 시체를 복원 하고 보존하는데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 온나라의 경제가 내리 막 길을 치고 있는데 거기다 또 투자를 한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배급도 안 주는데다 애도를 한다고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총동원 한거죠, 김일성 시신을 참배하는데다…모든것을 다 한거에요, 그래서 내리막길을 치던 북한의 경제가 더 이상 겉잡을 수 없이 내려 가면서 꽃제비 들이 빈번 했던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가족이 해체 되고 가정이 망가지기 시작 했던 거죠

김: 엄마들이 먹을 것이 없으니까 아이들을 두고 배낭을 메고 보따리장사를 떠난 거죠, 만약 제가 장사를 하러 물건을 가지고 황 해도로 갔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까 한달이 지나도 차가 움직이지를 않는 겁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올 수가 없는거에요. 그런데 오다 보면 황해도 쪽에 쌀이 많아요 그래서 입쌀 같은 것은 마대치기 해서 들고 오는데 그러다 보면 도둑맞아요

기차는 오지 않고 전기불이 없다 보니 잠깐 졸다가 어렵게 구한 쌀을 잃어 버리는 일도 있었다는 군요

김: 새 까만 어둠속에서 있다보면 그동안 자지 못하고 식량을 안고 차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순간에 깜빡 잠든 거에요 잠들면 누가 쌀 마대로 후다닥 도둑질 해 가는 거에요 잠에 장사 없잖아요, 도둑맞고 나면 집에 가야 되는데 올망 졸망하는아이들이 엄마 오기를 기다리는 거에요 그러면 집에 차마 못들어가고 여기서 다시 재기를 해서 쌀을 구입해 가리라고 생각했는데 길이 막혀서 여의 치 못하니까 엄마를 찾아 나오고…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을 잃어버린 일도 있었고 또 엄마들이 인신매매 브로커의 속임수에 넘어 가기도 했다고 김 대표는 전합니다.

: 엄마들은 여자잖아요 그러니까 브로커 여자 인신 매매범들 브로커 들이 약을 타 먹인다거나 감언 이설로 속이는 겁니다. " 중국에 가서 한달이나 석달동안만 돈을 열심히 벌면 그 돈으로 잘 살 수 있다 니까 여성들이 그 말에 솔깃해서 중국으로 갔는데 인신 매매범들 에게 팔려서 중국의 시골, 깊은 농촌의 노청각들 한테, 혹을 홀아비 한테 팔려가서 돌아오지는 못하고 그러면서 꽃제비들이 늘어 난거죠. 그런데 지금 김정은이 이번에 고난의 행군 시작을 또 선포 했잖아요", 이런 악순환을 또 시작 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악순환을 ….

김 위원장은 최근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는 선포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전했습니다.

그러면 지난 시기의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이번에 다시 시작된 고난의 행군과 비슷할지, 아니면 더 심할 지 궁금한데요

김: 이번의 고난의 행군은 저희들이 당했던 고난의 행군은 그때 당시 준비가 안되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들도 당에 충실 했던 분들입니다. 오직 당만 믿고 바라 보면서 언젠가는 시절이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리다 보니 가족들이 굶어 죽었어요 저희 오빠도….

한국에서는 이런 현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안타깝다고 김 대표는 지적합니다.

김: 탈북난민들을 현 정부가 받아 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그런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원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