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즐기려 해도 배가 든든해야 된다는 의미겠죠? 북한에서 살았을 때는 어렵고 힘들었는데 그래도 가끔씩은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혼자 실없이 웃곤 한답니다. 어렸을 때에는 강냉이 밥이라도 배불리 먹었을 때가 그래도 참 행복했었는데요. 그 중에서 중학교 시절의 남아있는 기억의 한 토막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미공급이 시작되기 전 중학생 시절이었지요. 제가 살던 회령은 청진하고 거리가 멀지 않아서 친구들은 가끔 부모 몰래 쌀독에서 강냉이며 입쌀을 퍼가지고 청진까지 가서 어느 식당에 가서 냉면을 먹고 왔다고 자랑을 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지요.
어려서 엄마를 여의고 집안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저에게는 그런 이탈행동은 꿈에나 있을 법한 일이었거든요. 한 여름에 냉면을 먹고 와서는 이가 시리다는 말을 하면 그 표현이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못해봤지요. 그때 그렇게 먹어보고 싶던 냉면은 남과 북 모든 국민들이 알아주는 대표적인 음식 중의 하나랍니다.
북한에서는 옥류관 냉면, 평양냉면 등 일러주는 냉면이 있는가 하면 또 함경도의 명태식해, 강원도의 보쌈 등 민속적이고 지방특유의 음식도 있습니다. 그리고 1990년 미공급이 시작되면서 개발된 두부밥, 인조고기 밥도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한국 음식들 중에서도 북한의 지역이나 명칭을 딴 음식이 있는 것은 알고 계시나요? 대표적인 음식이 함흥냉면과 아바이순대구요. 또 6.25 피난민들이 만들어낸 부대찌개도 있답니다. 부대찌개는 각종 반찬들을 한데 모아서 끓여낸 찌개인데 당시에는 가난하여서 군인들이 남긴 잔반을 모아서 끓여먹어도 참 맛있었다고 했죠.
부대찌개는 부산에서 특히 유명하다고 하는데 역시나 음식은 인간의 환경과 생활에 따라 만들어지고 정성과 손맛을 가미해서 더 맛있는 일품 요리가 되는데 거기에 지역마다 맛과 특징들이 다 다르답니다.
한국 사람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다니면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데요. 그만큼 요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 그리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종류와 맛이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탈북민 중에도 요리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탈북민이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북한에서 먹던 음식을 여기 남한 사람의 입맛에 맞게 새로운 요리로 개발해 식당을 하는 분이 많답니다.
지난 1998년 8월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탈북한 박유진 씨는 북한에서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지만 탈북하여 중국에서 살아야 할 때 식당에서 일한 경력을 토대로 한국에 입국하여 한식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요리사 명인 반열에도 당당하게 들어섰답니다. 유진 씨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에 필요한 것은 자격증보다는 실력이고 응용이라고 말합니다.
유진 씨: 자격증이 있다고 모든 것이 자기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는 다른 탈북민과 달리 북한음식이 아닌 한국요리에 도전해서 명인이 되었는데요. 중국에서부터 배운 식당일이 이제는 자신의 직업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진 씨: 다른 사람들은 북한 요리를 하는데 나는 한국 요리를 20년째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서울 요리를 배웠는데 서울 요리는 좀 싱겁고 달고 한데 내가 사는 경상북도는 좀 자극적인 음식이에요.
유진 씨는 지역마다 음식의 특징과 맛이 다 다르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요리를 하려면 손맛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던 구수한 된장국도 어머니의 손 맛이었구나 새삼스레 떠오르네요.
밖에서 뛰어 놀다가 어스름이 지는 저녁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어느 집에선가 끓이는 구수한 된장국 냄새도 그립습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주방에 환풍기를 달아놓고 구수한 된장국 냄새 저 높은 하늘로 날려 보내기에 그때 그런 향취를 느끼기에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가끔은 어딘가에서 날려오는 된장국 냄새는 고향의 향수를 불러오기에는 충분한 듯 싶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그만큼 노력하고, 남들보다 열배, 스무 배의 노력을 해야 되지요. 유진 씨도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밤을 패가면서 노력을 한답니다.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팔 아프게 양념을 저어가면서 뜨거운 주방에서 일하는 그녀에게도 열심히 일하는 목적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중국에서 낳아서 데려온 아들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또 박유진 씨는 자유아시아방송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유진 씨: 대한민국에 대안학교에 정착한 거 이런 선배들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내 편지를 두 번 올려가지고 그분이 낭독했어요. 방송에서...
박유진 씨는 자유아시아방송이 자신에게 준 희망이었다고 하면서 자유를 찾고 있을 북한 주민들과 지금도 중국 어딘가에 있을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도 자신이 가졌던 희망처럼 그들에게도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내가 탈북해서 중국에서 10년을 살면서 밤마다 외부세계의 소식을 듣기 위해 라디오 방송을 들었던 것처럼 자유아시아방송이 지구촌 어딘가에 있을 우리 북녘동포들에게도 희망의 소리가 되고 등불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을 가지고 오늘 이야기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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