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일하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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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장마전선이 형성되고 한국은 지역마다 산발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내리고 출퇴근길이나 아이들 등하굣길 안전을 조심하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뉴스를 도배합니다. 이렇게 궂은 날씨면 20여년 전 이맘때 중국에서 강제북송 되어서 청진 도집결소와 성북부업지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그 아픈 추억과 함께 온 몸 여기저기가 저리고 마음까지도 아파옵니다.

그때 그 시절, 흘러내리는 토사에 강물이 누렇게 변하고 범람한 물 사태 속에서 둥둥 떠내려 오던 지붕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장마철에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민둥산이 되어버렸던 고향의 산자락에는 이제는 수림이 울창해졌을까? 수해 현장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우리는 먼저 두고 온 고향의 산과 들 그리고 부모형제들부터 걱정을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생활에 잊고 싶었던 아픔을 아직도 간직한 채 살아야 하는 탈북민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아픔과 슬픈 추억보다 고향의 부모형제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탄광이나 광산에서 여자들이 전차 운전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여겼고 또 보통 선반을 깎거나 기계를 돌리는 작업을 여자들이 해도 별 무리 없이 보곤 했지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그런 일을 여자가 한다면 한 번 더 보고 대단하다고들 이야기 한답니다. 그만큼 한국은 여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위험한 일은 대개 여자보다 남성이 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대신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하던 기술적인 일인 도면을 그리거나 만드는 일을 여자도 과감하게 도전하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저 역시 오토캐드라는 도면을 그리고 선반을 깎기 위한 그런 일에 도전해봤지만 정말 적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 저는 회계자격증을 가지고 회사에서 경리로 근무를 했었답니다.

제가 일한 곳은 주유소였는데 자동차나 트럭에 기름을 공급해주는 업무였지요. 주유소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 큰 "탱크로리"라고 하는 기름운반 차가 와서 주유소에 경유나 휘발유를 공급해주는데 그 위를 여자인 제가 성큼 올라가서 측량을 하고 인계를 하면 엔간한 남자들도 놀라서 혀를 내둘렀답니다.

그 동안 북한에서 해왔던 일이나 중국에서 살 때 고생하던 것에 비하면 그건 일도 아니었지요. 어떤 탈북여성은 한국사회에서 남자들도 두려워하는 기중기 운전이나 버스 운전도 하고요. 조선소에서 페인트칠도 하고 공사장에서 건물을 짓는 남성들을 도와서 일손을 거들기도 한답니다.

건설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는 북한에서 살 때 농장에서 집 짓는 건설현장에도 나갔답니다. 블로커도 찍고 기와도 구워내고 또 몰탈을 이겨서 미장도 했지요. 그때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함께 일해도 여자로서 대우받아야 된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한국에 와보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저 역시 우리 탈북여성들은 어떤 일을 할 까 늘 궁금했답니다. 그런데 사회 각 곳에서 남자들도 두려워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우리 탈북여성들을 보면서 강인하고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갖추고 있는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저에게 반가운 전화가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탈북여성이었는데 너무나도 반가운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묻게 되었는데요. 함경북도 명천군이 고향인 전수진 씨는 한국에 와서 여러 가지 일을 해봤는데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면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네요.

녹취: 회계사 자격증을 따긴 했는데 그건 그냥 자격증이라서 모르고 땄는데 내 적성에 안 맞아서 캐드 자격증을 따서 캐드 일을 했어요.

수진 씨는 나이가 어린 20살 정도의 아가씨들 속에서 40대로 살아남는 것이 참 힘들다면서 그러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았는데요. 주변에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물어봐 주지 않아서 참 속상하다고 하는 군요. 성격도 시원 털털한 그녀의 웃음 섞인 소리에 그간 장마로 인했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녹취: 지금 잠깐 어디 사무실에서 자료 정리하는 것을 하고 있어요. (웃음) 25~6 대학생 젊은 친구들, 40대 나하고 동갑이거나 비슷한 사람들 보면 어머나 아저씨네, 아줌마네 하고 나도 거울 보면 똑같이 생겼더라구요. 하하~~

수진 씨의 호방한 목소리가 생활에 지쳐 힘들 때 들으면 기분전환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나이는 어느덧 40대를 넘어 50을 가까이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은 늘 자신을 젊은 시절의 청춘으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그런게 인생이죠...

더욱이 우리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에 와서 풍요로움 속에 행복하게 살기에 아직도 청춘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본답니다. 이렇게 우리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의 요소요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훌륭한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사회일원으로 또 고향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형제자매로서의 자리매김을 해나가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