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행복한 전쟁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국에는 삼식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아내에게 차려달라는 남편을 비꼬아서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요즘 사람들은 아침을 안 먹고, 점심은 회사에 가서 먹고, 저녁 한끼만 집에서 먹습니다. 쌀이 없어서 못 먹는 북한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집에서 살림을 사는 여자들이 하루 세끼를 다 챙겨먹는 남편에 대한 불평이 담긴 말이기도 하지요.

언젠가 일주일 중 이틀간을 휴무로 집에서 쉬는 남편에게 삼식이라고 장난 삼아 말을 했더니 몹시 서운해 하면서 노는 날 남편 밥 차려주는 게 귀찮느냐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집에서 세끼를 다 먹는 사람은 퇴직을 했거나, 일자리가 없어서 집에 있다는 말이라서 보통 무능력한 사람으로 연관 지어서 생각을 하나 봅니다.

한국도 예전엔 회사에 다닐 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이제는 회사에서 구내식당을 운영하면서 직원들 식사를 보장하고 또 식당을 운영할 만큼의 직원 수가 많지 않는 경우에는 배달이라던가, 가까운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식사를 하루 세끼를 집에서 하다 보면 내가 밥해주는 사람이야?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요즘은 단체에서 진행하던 교육도 끝나고 장마비도 추적추적 오는지라 어디 마땅히 나갈 생각도 없어 집에 있는데 마침 전역한 아들까지 집에 와서 밥을 갖추다보면 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답니다.

밥을 할 쌀이 없어서가 아니고 이렇게 넘쳐나는 곳에서 매끼 식구들 입맛에 맞는 식단을 갖추는 것이 주부들의 여간한 고민거리가 아니랍니다. 그래서 한번은 갈치속젓을 사서 매운 청양고추와 마늘, 파를 다져서 넣고 굴젓과 약간의 조미를 해서 따끈한 이밥에 한 숟가락을 올려서 슥슥 비벼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습니다. 마치 북한에 북송 되었을 때 청진 도집결소에서 먹던 낙지젓 맛이 생각이 났지요. 맛있게 먹고 사회통신망에 사진을 올렸더니 고향 동생이 언니, 나도 좀 해줘봐라고 해서 해줄 수는 없고 휴대폰으로 유명한 갈치속젓을 구매해서 바로 집에 도착하게 보내줬더니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가 왔네요.

녹취 :갈치속젓이 내가 언니 원래 좋아하거든요, 갈치속젓이 근데 잘못 사면 비려가지고, 비리다 못해 다 버렸어, 근데 언니가 보내준 거 딱 보니까, 와 어디서 이렇게 샀지? 침이 막 고이는 거야

이 동생은 해마다 저에게 된장이며 참기름과 농사지은 고춧가루를 빻아서 보내주고 있답니다. 얼굴도 못본, 다만 북한 사람이라는 공통점으로 언니 동생이 되어서 수 년째 우리 어머니들과 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주다가 갈치속젓 한 통에 감사하다고 전화를 해주네요. 여름에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면서 입맛을 다 잃었는데 갈치속젓이 오자마자 밥 한그릇 다 비웠다네요.

북한에서는 이밥에 간장만 찍어먹어도 맛있겠다고 노래 부르던 우리들인데 지금 한국에 오니 쌀을 가려가면서 먹고, 매일 매끼를 무엇을 먹어야 할까, 멀 먹으면 입맛이 돌아오고 맛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북한에 계시는 우리 형제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한국의 삶 자체가 여유가 넘치고 무엇이든 풍부해지니 더 잘 먹고 더 잘 살아가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실습을 한다고 밀가루를 만지고 놀다가 뿌리고 버리는 것을 보면서 북한 생각을 합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이럴 수가 없는데 어쩌면 저렇게 할까? 서운한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우리 집 냉장고에도 음식물이 넘쳐나고 썩어나서 쓰레기가 되어가네요.

바로 비닐봉지에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둡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먹어지지 않고 우리가 그토록 먹고 싶던 흰 밥덩이는 음식물 쓰레기들과 함께 나갑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살아온 우리도 아끼고 절약하고 싶지만 간사한 것이 사람 입이라고 맛없는 것보다는 맛있는 것을 찾아먹고 싶고, 늘 신선한 야채와 물고기, 육류를 찾습니다.

지난해 담궜던 김치는 올해는 다 떨어져서 여름김치 담그러 가까운 대형 상점을 다녀왔습니다. 햇배와 생강이며 멸치 육젓과 마늘, 양파와 빨간 고추 등을 사서 장바구니 가득 채웠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치 버무리는 날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김치를 버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돼지고기 수육을 합니다. 양념에 잘 버무린 겉절이에 돼지 수육을 싸서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하지요.

그리고 돼지고기를 먹을 때에는 새우젓갈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일깨워준 비법이지요. 돼지고기와 새우젓을 함께 먹으면 잘 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들은 기억으로는 돼지가 새우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북한에서 돼지가 새우를 먹을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더위가 끝나가는 요즈음, 잃어버린 입맛 때문에 늘 고심하는 한국의 주부들은 오늘도 식구들을 위해 무엇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까 고민을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 넘쳐나는 먹거리들 속에서 하루 세끼를 아닌 한끼를 말입니다.

북한은 계절이면 계절마다 전투를 부르짖는데 한국은 주부들이 하루 한끼 밥상을 차리는 것을 고민하는 행복한 전쟁을 치룹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남녀평등을 부르짖는 북한에서도 있을만한 그리고 매끼마다 가마 안에 넣어 끓일 쌀이 없어서가 아닌 풍성한 밥상을 갖추기 위한 북한주민들의 행복한 고민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