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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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국은 때 아닌 장맛비로 인해 전국이 물난리가 났답니다. 텔레비전 뉴스에는 연이어 물 피해 소식을 전하고 있고 휴대폰에 재난문자도 어디서 물이 불어서 피해야 하고 또 어디는 몇 백 미리 리터의 호우가 쏟아진다며 쉴 사이 없이 알림이 옵니다.

밤사이 쏟아진 호우에 저희 탈북민연대 사무실도 물이 들어와서 온 바닥에 물 천지여서 닦아내고 쓸어내고 했지만 큰 피해는 없습니다. 이런 비에는 농사짓는 분들 한해 농작물 피해는 없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빠른 태풍과 늦은 장마로 인해 이른 가을부터 수확하는 고추는 대풍이고 또 고추 가격이 더 내려간다고들 한답니다.

고추 하니깐 북한에서 고추 밭에서 고추 서리도 하고 고추 장사도 하던 때가 떠올라서 오늘은 고추에 담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까이에 사는 탈북민 동생이 시댁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데 고춧가루를 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막 시댁에 고추를 방앗간에서 빻아서 가져 온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하는 말이 좀 더 있으면 고추 가격이 내려갈 터이니 가격이 내려가고 나서 사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네요. 실은 자기 고춧가루를 사주면 더 좋겠지만 양심상 지금 가격이 비쌀 때보다는 싸질 때를 기다리라고요.

녹취: 고추 가루 좋더라 언니, 아까 고추 가져다가 방앗간에서 바로 뽀사 가지고 갖고 올라가는데 고추 엄청 좋네. 아침 일찍 내려와 가지고 고추 많으니깐 차에다 싣고 방앗간에 지금 가가지고 뿌사 가지고 내가 다 갖고 지금 올라가거든, 더 쌀 때 사 언니, 내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가격이 자꾸 자꾸 내려가니까 …

또 고향마을에서 살던 언니도 벌 농장에서 일하면서 고추 가루를 지은 것을 사라고 하는데 한국은 가게에서 파는 것도 있고 또 아름아름 알아가면서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생산자에게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리고 가격이 더 싼 것을 사려면 온라인 쇼핑몰 같은 곳에서 사도 됩니다. 하지만 김장 고춧가루는 될 수록이면 직접 농사지은 분들의 것을 사는 것을 선호한답니다.

북한처럼 한국도 김장은 일년 중에 중요한 행사여서 어떤 재료로 써서 담느냐가 아주 중요한 터라 김치에서 가장 중요한 고춧가루를 구매할 때 좋은 것으로 신중하게 고른답니다.

그러고 보니 북한에서는 우리가 고추를 흔하게 볼 수가 없었는데 지금 이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북한에서의 생활이 한 자락씩 떠오릅니다.

중국에서 학교 교사를 하면서 고생을 모르고 사시던 아버지가 북한에서 고추 한 개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텃밭에 고추 대여섯 포기를 심으셨다가 독도 미처 오르기 전에 따서 드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지금 이렇게 넘쳐나는 풋고추를 볼 때마다 강냉이를 많이 심어서 수량을 늘려야 하기에 채소 농사는 부자들이 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그때 삶이 너무나도 서글퍼지네요.

북한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도 잘사는 지역이나 농장들에서만 야채를 넉넉하게 심을 수 있었는데 제가 살던 곳은 가난한 곳이어서 남새농장이 다른 지역보다 크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았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남새농장은 리에서 중요 직책에 있는 간부들의 아내들이 일하는 곳이었답니다. 그러니 일반 농장원들은 고추며, 가지, 토마토 등은 어쩌다 한두 개 얻어먹어보는 것이 다였고 생기면 팔아서라도 식량을 해결하곤 했지요.

한 번씩 옆집에 사는 아줌마하고 배낭을 메고 남새밭에 가서 양배추며 파를 훔쳐다가는 소금에 절여서 식량에 보태서 먹기도 하고 또 청진이며 회령 시장에 내다 팔아서 식량을 사오기도 했지요. 훔치다가 발각되면 사상투쟁 대상도 되고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도 주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새밭을 서리하기 위해 밤길을 나섰지요. 감자 철이면 감자 밭, 보리 철이면 보리이삭을 흩어가고 지금 계절부터는 강냉이 밭이 절단 날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북한에서 나온 말이 있답니다.

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안전원은 안전하게, 당 비서는 당당하게, 그리고 노동자는 노골적으로 해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또 군인들 사이에서는 대대장은 대대적으로 해먹는다고 하구요, 그렇게 북한은 자신의 직위와 권력 그리고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하여 자신들의 쌀독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라는 구호가 있었죠. 북한에서 살 때 그 구호를 보면서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이기에 농장의 식량을 자기 집으로 이동한다고도 하고 또 조절을 한다면서 웃기도 했습니다. 임금님도 사흘을 굶기면 무밭을 그냥은 못 지나친다는 말이 있듯이 북한 주민에게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북한에서 생계만을 위해 살아오던 우리가 이제는 한국에서 쌀이 좋고 나쁨을 따지고 고춧가루도 국산이냐 외국산이냐 그리고 생필품도 명품을 사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생활도 질이 좋아졌구나 생각을 해봅니다.

처음에 우리 탈북민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에 비해 가진 것이 없고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고 진짜로 먹고 살 것이 절박한 절대적 빈곤이 아닌 한국태생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대적 빈곤을 느꼈지만 지금은 취업을 하여 경제적 토대도 마련해가고 풍족한 생활도 만끽하면서 생활하고 있답니다.

올해는 고향 땅에도 풍년이 들어 한 해의 큰 대사인 김장철에 가정마다 김장독이 가득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쌀독도, 마음독도 그득그득 채워져서 남북한 모두가 부자가 되는 그 날을 소망해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자유아시아방송 RFA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