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도 불고 또 태풍예고를 알리는 빗방울도 후둑후둑 떨어지는 요즘은 고향에서 맛보던 송이버섯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새벽이면 내 송이버섯 밭이라고 점 찍어놓은 산으로 올라가서 아침이슬 사이로 뽁뽁 소리 내며 굳은 땅을 뚫고 올라 온 송이버섯을 조심스레 캐어서 소나무 잎사귀를 깔고 그 안에 고이 모셔서 가지고 내려오면 아버지는 귀한 보물 다루듯이 다듬어서는 송이버섯 수매장에 가서 바치고 오시지요.
송이버섯을 바친 전표를 한 장, 두 장 소중하게 건사하고 계시다가 밀가루나 쌀이며 기름이 들어오는 날이면 수매장 앞에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물건들을 받아가지고 오시곤 했답니다. 간혹 갓이 부러지거나 대가 부러진 송이버섯은 등급에 들지 못하기에 집에서 먹기도 했지요. 감자를 썰어 넣고 풋고추도 한두 개 썰어 넣고 파기름에 달달 볶다가 송이버섯을 찢어 넣어 끓인 송이국은 지금 생각해봐도 입가에 군침이 돕니다.
어렸을 때 군인아저씨들이 송이버섯을 따러 와서는 농장 탈곡장에서 우등불이라고 하는 고깔불을 크게 피우고 막대기 끝에 송이버섯을 꿰고 그 위에 무심한 척 굵은 소금을 툭툭 뿌려서 보질 보질 거품 나도록 구워서 주던 그 송이 냄새도 코끝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이맘때면 늘 생각이 나는 송이버섯이고 또 북한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여러분들께 송이의 추억을 나눠드렸는데요. 오늘은 그런 추억이 깃든 고향 땅을 등지고 나오신 분들 중 언제면 통일되어서 고향을 가보나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탈북민이 300여명 가까이 되는데 그 중 80세를 가까이 하거나 그 연세를 넘으신 어르신이 몇 분 계신답니다. 저는 늘 그분들을 엄마라고 부르고 그분들은 저를 딸이라고 생각해주죠. 그런 분들이 코로나로 인하여 바깥 활동도 제한되고 너무 무료할 것 같아서 가끔씩 전화도 드리고 또 제철 과일이나 북한 음식들 같은 경우 나눠드리고 하는데 얼마 안 있으면 추석이라 어르신들이 어떻게 보내실지 전화를 해봤답니다.
녹취: 나는 멀미 때문에 그렇지만 대체로 다 그저 가까운데 갔으면 하지 먼데로 가는 건 힘들어한다. 이젠 늙은이들이 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별로 자꾸 먼데 다니는 거 썩 좋아 안 한다.
저의 지역에서 함께 사는 분들은 지금은 연세가 많아서 다리도 아프고 멀미도 하고 해서 이젠 좋은 곳으로 다닐 수는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치 좋은 데를 모시고 다니면 얼마나 좋아들 하셨는지 모른답니다. 또 2년 전까지만 해도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텃밭 농사도 짓곤 했는데 음식을 싸 들고 오셔서 풀어놓고 라디오를 틀어놓고 춤추고 노시기도 했었답니다. 농장에서 함께 농사짓던 분들도 북한에서 오신 어머니들께서 잘 노신다면서 흥겨워서 함께 춤추고 음식도 나눠 드시고 참 좋았는데 이제는 연로하셔서 그때 같은 시절은 다시 올 수가 없네요.
저도 한 번씩 그때 흥겹게 노시던 엄마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데 이젠 그 모습은 추억으로나 남겨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제가 그 분들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은 북한에서 못 다한 자식의 도리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계실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올 추석은 우리 엄마들이 어떻게 지낼까? 그냥 과일상자를 선물로 드릴까 아니면 북한 음식을 해서 드릴까 생각하다가 우리 1박2일로 외박이나 해볼까요? 하니 너무나도 좋아하시는 순진하신 우리 어머니들이십니다. 그래서 이번 추석은 시원한 아침공기를 마실 수 있는 가까운 산으로 우리 어머니들을 모시고 갈 예정이랍니다.
물론 북한음식 중 하나인 두부 밥이랑, 인조고기밥, 그리고 여기에 농마국수는 빼놓을 수 없지요. 우리 어머니들이 좋아하시는 돼지고기 수육과 토종 닭으로 백숙을 해서 드리면 우리 어머니들이 어깨가 또 덩실덩실 절로 올라간답니다.
저녁에는 윷놀이도 한판 하려고 윷놀이판도 준비해놨습니다. 그때에 맞는 경품도 준비했는데 실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우리 어머니들이 제일 좋아하는 선물이 따로 있답니다. 그건요, 립스틱이랑 향수를 드리면 제일 좋아하는 데요. 이유는 자신도 여자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그런답니다. 한국말에 엄마도 여자랍니다. 라는 말을 가끔 듣는데 그만큼 나이를 드셨어도 여자로의 인생을 살고 싶은 한결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노인요양원에 자원봉사를 다닐 때 손 마사지를 해드리다가 할머니들께 손톱에 예쁜 매니큐어를 칠해드릴까요? 하니 너무 좋아하시고 매 주마다 저를 기다리시고 정해진 날짜를 못 지키면 창 밖에서 저를 기다리시던 요양원의 어르신들도 생각이 납니다. 어쩌면 저 역시 나이를 들어가면 갈수록 더 예쁘게 치장하고 꾸미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야만 여자의 인생이라고 우리의 머리가 인지를 하니깐요. 오늘은 이 기회를 빌어 여자는 그래야 돼, 엄마는 그래, 보다는 "여자의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말을 한번쯤은 듣고 싶어지네요.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남과 북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던 여자라면 저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지 않을 까요? 저는 북한 주민들도 특히나 북한 여성들도 이제는 억척같은 집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해결사 같은 엄마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자유대한민국에서 탈북민들이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입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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