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새해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벌써 추석을 지납니다. 한국에서의 추석은 민족 최대의 명절 중에 하나입니다. 북한에서 살 때에는 김일성과 그 가문이 태어난 생일날이 민족최대의 명절이고, 그 외에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한국은 설 명절과 추석 등 절기에 해당되는 여러 명절이 있답니다. 올해 추석은 코로나 이후로 3년 만에 규제가 풀린 터라 많은 귀성객들로 붐빕니다.
저희는 다른 가정들과는 달리 시댁과 친정 부모 모두가 세상을 뜨고 또 화장을 해서 날린 지라 딱히 성묘를 갈 일도 없고 찾아올 이도 없어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시댁이 있거나 부모님을 모셔온 탈북민들은 그래도 추석명절에 부모님께 갈 수가 있지만 혈혈단신으로 와서 거기에 시댁 어르신마저도 안 계시는 저희 같은 가정은 명절이 적적하답니다. 그래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부부와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올해는 군에 갔다가 전역한 아들이 일자리를 찾기 전에 휴가삼아 온 가족이 섬으로 놀러 다녀왔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살 때에는 추석이 명절이라기보다는 돌아가신 분을 기려서 산소를 찾아가는, 죽은 이를 기리는 날로만 생각을 했는데 여러가지 유래가 내려오는 것도 있지만 근대에서는 일년 농사를 짓고 가을이 오면서 첫 수확물을 가지고 음식을 해서 조상님께 바치고 한해를 지켜주고 잘 살게 해주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의미가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네요.
북한에서는 추석이면 소랭이에 만든 음식을 담아서 이고지고 또 손에는 낫을 들고 가서 당일에 벌초도 하지요. 빈부의 차이는 방앗간에서 쌀 몇 되를 가루 내는 것과 추석 당일 날 이고 가는 소랭이 안에 담긴 음식의 가지 수에서 차이가 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은 일주일 전이나 그 전부터 선산이라고 부르는 가족 산소에 가서 미리 벌초를 하더라구요. 그리고 음식은 북한처럼 요란하게 해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고 간단하게 하고 조화를 들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식들과 친척들이 오면 음식을 해서 나눠주는 부모님의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빈손으로 부모님께 가지 않고 선물꾸러미를 들고 갑니다.
저도 제가 이끄는 단체에서 탈북하신 우리 어머니들을 위해 선물세트를 마련했답니다. 거기에 탈북민 동생이 어머니들 드리라고 보내온 된장과 고추장까지 넣어서 드렸지요. 지역 경찰서와 탈북민들의 정착지원을 하는 지역의 하나센터에서도 선물을 들고 와서 자신들을 대신하여 어머니들께 전달해주라고 해서 가지고 갔더니 우리 어머니들이 저를 자식인양 끌어 안고 고마워하시네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서 직접 전달하는 선물도 있지만 만나지 않고도 오고가는 선물이 있습니다. 한국은 배달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주소만 알면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자기가 원하는 온라인 상점에서 물건을 사서 집까지 배달을 시킬 수 있습니다. 이 좋은 서비스를 이용해 저는 한국에 와서 저의 스승이자 양부모가 되어주신 분에게 그동안 지켜봐주신 은혜에 감사의 뜻을 담아 이불을 구매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추석에 한국은 민족대이동으로 길이 막히고 선물이 오고가느라 배송차가 도로에 주야로 달려도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추석 문화가 없어서 그 곳에서 사는 한인들은 이런 날 출근을 해야 된답니다. 대신 미국은 11월 말에 추수감사절이라고 한국의 추석 같은 명절이 있어 이날 가족이 모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이번 추석엔 갓 지나간 태풍에 마음을 졸였는데 그래도 남해안에는 태풍이 큰 피해를 입히지 않아서 다행스럽게 배 운항도 제대로 되었지요. 한국은 이런 섬에 갈 때 큰 여객선 밑에 개인의 차도 실을 수가 있는데 저희는 욕지도라는 섬에 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려고 자가용 차를 가지고 갔답니다. 온 식구가 2박 3일간 생활을 하자면 챙겨갈 짐이 많아 여행 가방을 들고 가는 것보다는 차에 짐을 싣고 다니는 것이 편리하죠.
그렇게 들어간 섬은 대한민국의 남해에 자리 잡고 있는 수 많은 섬들 중에 볼거리도 많고 경치가 좋기로 이름 난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식당과 즐길꺼리 모두가 구비되어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습니다.
욕지도에서 나는 고등어회는 육지에서는 감히 그 맛을 흉내도 못내는 일품 맛입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나는 고구마로는 빵도 만들고 음료수도 만들어서 판매 하지요. 네 바퀴 자전거를 타고 섬 둘레 길을 따라 돌면 그동안 가졌던 피로도 싹 사라집니다.
또 예약한 숙소 주인장의 안내에 따라 점을 찍고 던지는 낚시 또한 손맛과 입맛을 확실하게 잡아줄 좋은 시간이 됩니다. 예전에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날로만 알았던 추석이 이제는 저희에게는 슬픈 기억만이 아닌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명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주민 여러분들께서도 이제는 김일성 일가가 태어난 날보다는 온 민족이 함께 웃으며 즐 길 수 있는 추석 명절이 되셨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모든 청취자 분들 즐거운 추석명절, 즐거운 한가위 되십시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