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소개팅에서 만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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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오늘은 31살에 대한민국에 온 시영이가 소개팅을 나간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입니다. 북한에서 여자 나이 31살이면 금, 은, 동을 지나 알루미늄 값이라고들 하죠. 하지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여자 나이 31살이면 금값입니다.

조선시대 같은 신분 사회 북한에서 자라 갑자기 21세기 자유대한민국에 뚝 떨어진 제가 알리가 있겠나요? 개인적인 제 생각이긴 하지만 당시 저는 나이 많은,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가난한 여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답니다.

대한민국에 도착하면 북한에서 온 저희을 위해 기계장비가 으리으리한 깨끗하고 엄청나게 큰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건강이 정상인 분들은 국정원에서 조사받으면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깨끗한 환경에서 정착을 시작한답니다.

신원조사를 마치고 하나원이라고 부르는 교육 시설에서 세달 동안 또 나라에서 나누어주는 새옷에 맛있는 수십 가지 음식들을 매끼 먹으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데요. 자유가 있는 이곳에서 가끔 어떤 사람들은 석달 동안이나 모아놓고 집단생활을 시키지 말고 빨리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지만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너무 행복했고 감사한 날들이었답니다.

하나원을 마치면 본인이 선택한 각 지역의 아파트에 도착하게 됩니다. 먼저 정착하신 탈북민들이 자원봉사로 지역도 알려주고 여러 가지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집에 찾아옵니다. 처음 만난 고향 후배들이라 엄청나게 챙겨주신답니다. 저의 집에도 봉사해주시는 도우미 이모님이 오셨는데요. 그분이 저의 어머니에게 따님이 이쁘다고 하시면서 나이를 물으셨답니다.

살짝 부끄러움에 어머니는 나이가 좀 있다면서 제 나이를 알려주셨고 이모님이 인상이 확 바뀌시더니 얼른 결혼시키자고. 당시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으셔서 무척 걱정하시던 터라 나이든 딸내미 얼른 결혼시켜서 잘 살게 하리라는 욕심이 앞서셨나 봐요.

감사하다고 하면서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북한에서는 동네에서 좀 마당발이신 이모님들이나 지인들이 다리 건너 중매를 서시잖아요. 그런데 이곳 대한민국에는 남녀를 서로 이어주는 결혼정보업체라는 회사가 있더라구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분이 그 업체의 사장 부인이었어요.

북한 같으면 나이 찬 딸이라 아무 데라도 시집보낼 나이지만 이곳에서는 금값인 제가 다음 주 주말부터 소개팅을 엄청 많이 나갔는데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아침이면 도우미 이모 손을 잡고 커피숍에 갔답니다.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신기한 외국 음악들 메뉴판을 꽉 채운 다양한 커피 이름, 반바지에 어깨를 다 드러낸 남한의 여자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이랑 이야기하라니 당황 그 자체였죠. 사투리도 하는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커피를 주문할 줄도 몰라서 처음에는 그냥 ‘같은 거로 마실게요’ 이렇게만 말했답니다.

대한민국에서는요 남자는 여자를 계란처럼 아껴야 한다고 하고 여자의 말을 잘 들으면 누워서도 떡이 생긴다, 또 ‘아내의 말은 곧 법이다’라고 말하는 세상인데요. 남존여비 사상이 머리에 꽉 박힌 북한에서 온 시영이는 대한민국의 남자들 속에서 인기 최고였답니다.

한편 저의 처지에서 소곤소곤 서울말을 하는 남자들이 세심해 보이기도 하고 또 문도 먼저 열어주고 의자도 빼주는 남자들이 정말 배려심도 깊어 보였죠. 지금 생각하면 남자면 당연히 여자가 들어가면 문도 열어주고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줘야 하고 고기를 먹을 때 썰어서 접시에 놔줘야 하고 혹시 차에서 내릴 때 예의 있게 문도 열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요.

이모님을 따라 나간 소개팅에서 저는 ‘예’ ‘아니요’만 하다 들어왔는데 며칠 후 지인 언니가 이야기를 듣더니 주변에 착한 지인 동생이 있다고 했죠. 어머니가 나이도 들었는데 빨리 결혼이라도 하면 마음 놓고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하여 주말에 또 소개팅을 나갔습니다.

소개팅을 한분에게 제가 뭐를 물었는지 아시나요? 아마도 청취자님들은 제대로 물었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었답니다. 덕분에 제가 지금도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화려한 싱글로 살아가지만, 그때 그분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요.

인물 체격도 직업도 괜찮았는데 저는 그분을 만나 한가지 사실을 듣고 소개해준 언니를 나무람하면서 아무리 제가 북한에서 왔기로서니 그건 아니라고 서운한 말까지 했답니다. 너무 궁금하시죠? 제가 그분을 만나 제 소개를 하다 그분이 궁금한 것을 물으라고 하여서요. 저는 그분에게 수 많은 질문 중에 대학은 나오셨나요? 라고 물었고 그분이 네 대학을 나왔고 현재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고요. 아파트 몇 평에서 살고 급여는 어느 정도고 형제는 몇 명이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이야기했죠

저는 부모님이 함께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두번째로 군대는 어디를 다녀오셨냐고 물었습니다. 정말로 그분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군 복무를 안 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저는 놀랬습니다. 사실 북한에서 남자는 군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고 하고 또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사회구성원에서 좀 밀리잖아요.

이곳에서는 군 복무를 안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군에 안 갔다고 하여 사회생활에서 불편한 것이 없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고 군 복무도 24개월에서 현재는 18개월로 줄어들기까지 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당원이 아닌가고 묻지 않은 것도 다행이지요. 하지만 당시 저의 처지에서 눈높이를 엄청나게 떨구어 정말 초보적인 대학과 군대를 물었던 겁니다.

이곳에선 그분의 급여가 얼마인지 집은 몇 평인지 나중에 결혼하면 아내에게 어떻게 잘하겠는지 이런 물음을 해야 하는 소개팅 자리에서 군에 다녀왔냐고 물었던 제가 바로 분단의 아픔이 낳은 희생양이죠.

일말의 기대감이 싹 사라지고 저는 약속이 있다고 그 자리를 피했고 소개해준 언니에게 아무리 저를 쉽게 봐도 어찌 군대도 안 다녀온 사람을 소개해주냐면서 뭐라고 했어요. 언니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냐고 했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남자가 군에도 안 다녀왔는데 뭔 일을 잘하겠냐고 수다를 떨었고 어머니도 공감했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습니다. 이곳에서는 여성들이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답니다. 북한에서는 당에 얼마나 충성하는 집안인지 또 당을 위해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앞으로 당의 신임을 얼마나 받고 살아가는가가 선택조건이라고 하면 이곳에서는 신분도 없고 계급도 없이 오직 남녀의 사랑이 기본이고 그 나머지 이 남자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가지고 있는 기술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안정적인지, 직업이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지, 여자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만 할 것인지 결혼까지 해야 하는지 자신을 위한 꼼꼼한 확인이 필요하답니다.

그 후로 저는 제대군인에 대학을 졸업한 남자에서 지금은 직업도 능력도 키도 나이도 기술까지 나이는 점점 들어가지만 눈높이만 지긋이 올라가 결혼을 못 하고 살지만요. 아프시던 어머니도 건강해지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능력 있는 여성으로 자신 있게 살아가는 지금의 삶에 감사하답니다. 언젠가 북한 여성들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인정받는 세상에서 함께 살기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 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