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편리함 속에 느끼는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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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생활조건이 어려운 북한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사시사철 따뜻한 물이 나오고, 겨울이면 보일러를 틀어서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고 여름에는 덥다고 에어컨를 켜면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을 꿈도 꾸지 못했던 저희들 입장에서는 지상천국에 온듯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도 이런 생활이 가끔은 꿈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런 한국에서 모든 것에 만족하고 살아야 하겠지만 감사함에 넘쳐 살다가도 풍요로움에 익숙이 되어서 조금만 불편해지면 또 불만을 토로합니다.

저녁을 먹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방송으로 내일은 한국전기공사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전기 점검을 하니 두 시간 동안 정전이 된다면서 입주민들에게 냉장고 관리를 잘 하라고 알립니다. 국가적인 점검일이라 불만을 토로한다고 안 할 일도 아니지만 두 시간이나 전기가 끊기면 냉장고를 여닫는 일도 줄여야 하고, 집에 있으면 텔레비젼도 못 볼 것이고 더욱이 밖으로 나가려 해도 고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가 서 버리면 걸어서 내려가고 올라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두 시간은 북한에서 살았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느껴집니다.

내일 정전을 알리는 방송을 듣다보니 우리가 북한에서 전기가 없어 캄캄한 밤을 보내야했던 시절을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서 이처럼 행복한 생활에 금세 불편을 느끼는 제가 이상하게 생각돼 어색한 웃음을 지어봅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생활의 불편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층간소음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뉴스를 보면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위 아래층에서 사는 입주민끼리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저 역시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윗층 때문에 고민이 될 때도 있고, 아래층에 민폐를 끼치는 일도 가끔씩 일어납니다.

남보다 쓸데없이 깔끔을 떤다고 햇빛 좋은 날 베란다 창틀을 청소한다고 물을 부었다가 밑에 층에서 햇볕에 소독한다고 널어놓은 이불에 물벼락을 안긴 일이 있었답니다. 또 한밤중 위층에서 의자가 덜그덕 거리는 소리,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소리들은 다반사로 들립니다.

그런 것들은 다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아직도 이웃이 싸우는 소리는 적응이 어렵네요.

그런 소음 때문에 한국의 아파트들은 공사를 할 때면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하고, 공휴일은 피해서 작업 시간을 잡습니다. 온 하루 집에 있을 때가 많은 주부는 대낮이지만 전기공구들로 작업하는 소리들로 신경이 날카로워 집니다. 특히 야간에 일하고 낮에 집에 와서 쉬는 사람들에게는 고문 같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웃들이기에 서로 양해를 부탁하고 또 살아갑니다.

그런데 층간소음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전 세계 어디서나 벌어진다고 하죠. 간혹 텔레비젼에서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모저모를 보다보면 다 같은 사람들이라 어느 곳이나 느끼는 고통은 같구나 하고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왜 북한에서는 이런 문제를 모르고 살았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고보니 북한에서 살 때 아파트에서 살아본 기억이 없고, 어쩌다 친척집에 가서 생기는 층간소음은 그냥 그러려니, 국가에서 하는 일에는 별로 불만을 이야기 하면 안되는 금기어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보니 국민들은 국가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기도 하고 평가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시작하여 문제점을 들여다봅니다. 그래서 층간소음도 국민의 안정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인지하고 아파트를 건설하는 회사들마다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방음장치를 최대한 강구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국민의 편리와 편의를 위해서라면 국가가 먼저 나서주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국민을 위한 바른 정부라고 말 할 수가 있겠죠. 그런 일에서 한국사회는 올바른 일을 추진하기 위한 관리감독 제도도 필수라고 볼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한국은 노후 된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주인이 돈을 들여서 다시 장식을 바꿀 수도 있고, 아파트를 매매하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집을 꾸밀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아파트 값이 물결처럼 오르내리는 속에서도 고가의 집을 구매하고 새로 장식을 한다고 여기저기에서 전기 공구를 가지고 드르륵 드르륵 내는 소리는 신경을 날카롭게 할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의 경제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사나흘 전까지도 울리던 전기기계 소리가 몇 일전부터는 조용해졌네요. 이젠 집수리를 하던 작업을 다 마쳤구나, 어느 층에 누가 이사를 들어올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좀 오래된 아파트지만 그럼에도 새로 이사를 와서 새로운 얼굴을 보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창문으로 냉장고며 옷장 등을 싣고 오르내리는 사다리차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사 떡을 돌린다고 집집마다 문손잡이에 걸어놓은 떡 또한 늘 기대가 됩니다.

북한처럼 한 동네에서 누구네 집에 숟가락 몇개인지 몰라도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볍게 목례만 하다가 어느 날엔가는 친한 이웃이 될 수도 있는 한국생활 입니다. 조금만 서로 이해를 한다면 마냥 딱딱하기만 하던 아파트 생활도 재미있게 바꿀 수 있겠지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더불어라는 말을 참 많이 씁니다. 서로 이해를 하면서 너와 나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이지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