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인심 넉넉한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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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제가 사는 곳에 5일장이 열렸습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사는 동네는 1일 하고 6일마다 장이 섭니다.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는 같는 5일장이라고는 부르는데 3일과 8일마다 장이 서지요. 날짜가 다르다 보니 시장 상인들이 돌아가면서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시장 인심을 무시하지 못하기에 예전부터 내려오는 노래가 있답니다.

<조영남 화개장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이렇게 사투리가 시끌벅쩍하고 목청 높은 시장 통에서는 큰 대형 상점과는 다르게 적은 돈을 가지고 많은 양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또 시골인심답게 내놓은 수량을 담아주고 조금만 더 주이소 하면 아따 요즘 가격이 올라서 많이 비싸, 하면서도 한줌 꺼내서 주는 넉넉한 인심도 있습니다. 한 다라이에 이천원, 하면 두개 사면 삼천원에 주세요 하면 남는게 없는데 하면서 가져가 하시죠.

그런 재미에 포장해서 가격을 정해놓은 상점보다는 재래시장을 더 찾게 됩니다. 집 식구들이 두부를 좋아해서 늘 두 모씩 사고, 또 가끔가다 두부밥을 만든다고 여러모씩 사기에 두부 파는 이모는 늘 없어서 못 파는 두부인데도 저만 가면 어떤 때는 두부나 도토리 묵을 한번씩 덤으로 얹어줍니다.

요즘은 지역마다 지역화폐가 나와서 시장통에서 유통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추석이라 받은 상품권 10만원이 있어서 시장에 들고 나갔죠. 지역상품권은 현금처럼 재래시장에서 유통이 됩니다. 그리고 각 대형상점에서도 자신들만의 고유상품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추석이나 명절때에는 물품뿐만 아니라 이런 상품권을 봉투에 넣어서 선물로 주는 경우도 있지요.

또 인터넷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문화상품권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청소년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문화활동과 책을 살 수 있는 상품권도 있고, 저소득층에만 지급되는 카드형 상품권도 있고요.

상품권을 사용하면서 마침 우리 탈북민 언니가 보이길래 재래시장에서 어린 닭을 튀겨낸 튀김을 사주려고 했더니 이것도 안먹고 저것도 안먹고 끝내는 아무것도 안 먹으려 해서 끝내 사주지 못 하고 제가 살 것만 사가지고 돌아왔네요.

녹취 : 싫어 싫어 어떻게 그런 거 들고 다니노…

우리들만의 통하는 언어로 강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러고보니 북한에서도 시장에는 늘 혼자가 아닌 친구들하고 함께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제가 사는 고장에서 회령시장까지는 기차를 타고 다섯 정거장이나 더 가야 하기에 여행증명서도 못떼고 도둑기차를 타고 다녀야 했기에 늘 혼자 다닐 생각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한 번은 언니가 쌀 10킬로를 사오라고 준 돈을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손가방에 넣었다가 홀랑 잃어버리고 시장 통에 앉아서 대성통곡하던 일도 있었지요. 그런 추억이 깃든 장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장은 회령에 있던 시장처럼 커다란 장은 아니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고 자그마한 공간에서 시장 상인들이 부식물이며 음식과 고기들을 팔게 해놓은 장소입니다.

그런 한국의 시장에서는 북한처럼 가방에 돈을 잃어버리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혹여 돈을 떨구는 것을 보게 되면 한국에서는 따라가서 저기요, 돈 떨궜는데요 하면서 주워주는 일이 자기 주머니에 넣는 일보다 더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점점 박해지면서 지갑을 주워주고 봉변을 당하는 일이 많아서 아예 떨어진 지갑을 줍지 말자는 말도 있지만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은 뉴스에서도 물가가 올라서 시장 상인들이 아우성이고, 시장을 이용해야 하는 국민들이 배추 값에 혀를 내두릅니다. 대형상점들도 물건 사러 가보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이렇게 물가는 상승하고 인심도 점점 박해지는 세태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한국 국민들 못지않게 북한은 더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들을 접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주변 나라들과의 무역도 단절된 상태에서 우리 부모형제는 어떻게 살아갈 까? 오늘도 물가는 비싸지만 그래도 가정의 건강과 살림을 책임진 주부로 시장에 나가서 양손 무겁게 검은 봉다리들고 집으로 오면서 또 생각나는 것이 북한에 남겨진 우리 형제 생각입니다.

남편이 벌어주고, 아들이 벌어주고 하루 나가서 일하면 쌀 100여 킬로를 살 수 있는 살림에도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하루 벌어서 한 끼 밥벌이조차 겨우 되는 북한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지 몸으로 겪어본 우리들이라서 고향 생각 또 한 번 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북한도 이제는 시장을 활성화 하여서 힘들게 메뚜기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검열관들을 피해서 도망다니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력갱생을 외치면서 시장에서 더 많은 물건들이 팔리고 사고 매매가 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먼저 풀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을 갖고 오늘의 방송 마칩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