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고추이삭 줍기와 까치밥

강원 강릉시 운정동의 한 주택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남겨 둔 주홍빛 홍시를 붉은부리찌르레기가 따 먹고 있다.
강원 강릉시 운정동의 한 주택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남겨 둔 주홍빛 홍시를 붉은부리찌르레기가 따 먹고 있다. (/연합)

0:00 / 0:00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올해는 가을이 빨리 지나가는 듯 합니다. 벌써 추위가 찾아오고 강원도 지방은 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콩단을 꺽어 들여오고 강냉이 밭에서는 강냉이를 따고, 지금쯤은 강냉이 가을이 한창인 넓은 밭 한쪽에서는 가만가만 이삭 줍는 사람들도 보이죠. 그러면 농장원들이 이삭 줍는 사람들을 쫓아내거나 주은 강냉이며, 배낭도 압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삭을 줍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과일도 제일 높은 곳에 달린 과일은 따지 말라고 합니다. 그건 새나 다른 동물들도 이삭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지요. 제일 높은 과일나무 꼭대기에 몇 알씩 남겨놓는 과일을 한국에서는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그런 한국에서 올해는 벼농사도 풍년이지만 농민들은 논을 갈아 엎었습니다. 벼가 잘되어서 쌀이 가득해도 쌀을 사먹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지 않고 또 쌀값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쌀 뿐이 아닙니다. 고추며 과일도 약을 뿌리고 사람을 써서 농사를 지었지만 수확하는데까지 인력을 쓰면 그 값이 안나오기에 아예 밭에서 수확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며칠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오던 농사를 짓는 분께서 고추밭에 고추 따러 오라고 글을 올렸기에 바람도 쐴겸 가까이에 사는 탈북민 언니랑 함께 다녀왔습니다. 마을유지인 지인은 올해는 고추가 익어야 할 시기에 비가 와서 약도 못치고 탄저병이 와서 안타깝지만 씨값도 못 건진다고 밭에 세워놓고 버려야 한다고 하는 군요. 아까운 마음에 염치를 불구하고 커다란 마대자루에 한 자루씩 꽉꽉 박아서 땄습니다.

그리고는 지인이 직접 농사를 지은 사과밭으로 갔습니다. 트럭을 타고 덜컹거리는 산골길을 따라 가면서 북한에서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뼈도 여물지도 않은 17살, 20살도 채 안된 나이에 집단진출로 농장에 나가서 뜨락또르를 잡아타고 다니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뜨락또르 운전기사가 변속기어를 넣고 달리면 따라잡느라고 숨을 헐떡이면서 뛰어다니던 철없던 시절이지만 1톤 트럭 위에서 잠깐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웃었습니다.

산속 길을 달리는 내내 길 옆에 보이는 사과나무를 보면서 같이 간 언니는 연신 감탄을 내뿜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들이 사는 곳에는 엔간한 과일나무는 없고 백살구나 사과배가 있었지만 그런 과일 역시 과수농장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은 과일을 실컷 먹어볼 수는 없었지요.

어렸을 때 돌배나무가 있던 집이 얼마나 부럽던지, 지나가면서 돌배가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돌맹이를 던져보았지만 명중을 하지 못하고 집 주인에게 쫓기는 일도 있었죠. 7월 말경이면 경비원 눈을 피해서 살구나무에 올라가서 살구를 따서는 청진까지 가서 팔기도 했는데 한국의 과일은 북한의 과일나무처럼 높지 않네요. 그리고 제일 높은 곳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서 땁니다.

그런 사과들이 한 가지에 주렁주렁 열려있습니다. 사과도 채익지 않은 파란 사과와 빨간 사과만 있는 줄 알았는데 노란 황금빛을 띤 사과도 있습니다. 주인의 차에 실은 커다란 구럭을 가지고 가서 고추 따러 온 사람들과 사이좋게 사진도 찍고 또 나무에서 바로 딴 사과를 맛도 보면서 즐겁게 놀다가 체험으로 사과를 땄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따온 사과를 선별하여 판매하는 박스에 넣어서 차에 실었습니다. 개량품종으로 일반 사과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맛도 좋고 또 밭에서 직접 따서 가져온 사과라 집식구들도 가게에서 사먹는 과일보다 훨씬 맛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안내를 받아서 지역에서 진행하는 마늘 축제장으로 갔지요. 커다란 노천 무대에서는 가수들이 와서 한창 흥을 돋구고 구경 나온 사람들도 어깨춤을 들썩입니다. 우리도 옆에 서서 구경을 하다가 마을 축제에서는 맛있는 것을 먹고 가야 한다고 하시기에 지인의 손에 이끌려 따라갔습니다. 여기저기 커다란 천막을 쳐 놓은 곳에서는 기름에 튀김도 튀기고 지짐도 구워서 팔고, 국밥이며 여러가지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었네요.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함께 간 사람들은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국밥을 주문하고 우리는 따뜻한 지짐이에 막걸리를 가져다가 먹었답니다.

한국은 보통 초대한 사람이 음식을 사서 주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라 점심과 저녁 모두를 우리를 초대한 마을 유지 분께서 사주셨네요. 여름 내 농사를 짓느라 고생하고 가을에는 수확을 못해서 마음도 무거우셨을 것인데 바람도 쐴겸 놀러간 우리들에게 멀리서 왔다고 매운탕에 맛있는 지짐이까지 사주니 그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저녁을 대접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간 언니도 이야기 합니다.

북한에서라면 저 많은 고추밭을 다 버리지 못할 거라고 너무나도 아깝다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한국에 왔으니 이런 현상도 볼 수 있지 않겠냐고 하네요. 산책을 하는데 도토리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아주머니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칩니다. 다람쥐가 먹게 주어가지 말라고요.

남과 북의 너무나도 다른 기이한 현상입니다. 어쩌면 북한에서의 우리는 산짐승이 아닌 내 형제와 내 이웃이 굶어 죽어가도 내가 먹고 살기에 바빠서 못 본척 하고 살아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살다보니 이웃도 보이고 어려운 사람도 눈에 들어오고 심지어 산속 짐승과 새들이 먹을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삶이 풍요로워야 보이기 마련이지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