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바람에 떨어진 낙엽 하나 주웠다. 주워놓고 보니 세월이더라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떠오릅니다. 얼마전 2박3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목적지는 한국과 북한이 마주한 3.8분계선-비무장지대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비무장지대 또는 DMZ라고 부르는데 몇년 전부터는 미군이 주둔하던 곳을 개방하여 민간인들이 그곳에서 저 멀리 북녘 땅을 바라 볼 수 있고 또 미군이 사용하던 건물 안에서 숙식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약속 장소로 가보니 이미 여러명의 탈북민들과 민주평통자문위원들이 나와서 계십니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 통일에 대한 자문과 의견을 대통령께 직접 할 수 있는 특별상설기관입니다.
자문위원들께서 밤새도록 내려서 가져온 커피와 준비해 온 간식들을 먹으면서 6시간을 달려서 찾아간 비무장지대에는 그곳에 직원들이 또 맞이해줍니다. 첫날 저희를 안내해준 곳은 캠프그리브스라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6.25사변과 우리 한반도가 전쟁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세계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알게 되었고, 직접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철조망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곳도 체험했습니다.
캠프그리브스 내의 여러 곳을 방문하고 저녁은 자문위원들과 탈북민들의 1:1 멘토 멘티를 정하는 시간을 가졌지요. 멘토 멘티는 도움과 상담을 주고 받는 사이라는 의미인데요. 상담을 해주고 후견인이 되는 사람은 멘토라고 부르고 상담과 도움을 받는 사람을 멘티라고 합니다.
한국은 이런 멘토 멘티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도 있습니다. 이 활동을 초등학생이나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상대로 하면 봉사활동이 인정되는데 교회나 사회적인 단체에서도 특별한 보상이 없이도 멘토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멘토멘티를 정하는 규칙은 따로 없이 주머니에서 각자의 물품들을 내놓고 그 물품들을 잡은 탈북민과 짝이 되는 방식이었는데 저는 자문위원들 중 인원이 남아서 짝에서 배제된 분들하고도 친해져서 세 명이 저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그 날은 특별히 북한이 바라보이는 비무장지대여서 준비하지도 않은 저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마이크를 주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북한에서 부르던 노래를 불렀습니다.
[ 다시만납시다 ] 백두에서 한라로 우린 하나의 겨레 헤어져서 얼마냐 , 눈물 또한 얼마였던가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
함께 간 탈북민들도 눈굽을 적시며 함께 열창을 했고 자문위원들도 손을 높이 흔들어주면서 우리는 하나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감동의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다음 날에는 서먹서먹해졌던 분위기가 날아가고 이제는 사진도 어우려서 찍은 시간들도 생겨납니다. 평화누리 공원도 다녀오고 특히 이튿날에 다녀온 곳은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을 향해서 판 땅굴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았었어도 직접 찾아와보니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깊이 들어 갈 수록 정대로 쪼았을 만한 정대자리며 암벽들을 바라보면서 이토록 깊은 굴을 뚫느라고 여기에서 죽어갔을 젊은 청년들이 얼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던 고향마을에도 갱도가 여러개 있었는데 그 곳에서 정으로 뚫고 발파를 하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런 것들을 겪어본 저로서는 그들의 목숨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갔던 곳이 제3 땅굴이라고 하니 제1, 제2의 땅굴도 있을 것이고 한국이 알 수 없는 땅굴도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굴로 들어가니 저 끝에서 170미터만 더 들어가면 북한이라고 합니다. 그 앞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여러개의 벽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도라전망대를 방문했습니다. 갈 수 없는 곳 북한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착잡했지요. 6.25전쟁이 끝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날에 한국정부는 포로병들을 다리에 세우고 저 다리로 갈 것이냐고 물었고, 저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라는 이름도 붙었다고 했습니다.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 개성은 30여년 전 제가 북한에서 살 때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후에 이어지는 도자기 프로그램에 저의 마음을 썼습니다. 탯줄을 묻은 곳 조국이라 부를 수 없는 그곳, 아픔만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립다 우리는 탈북자이기에 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은 바람의 언덕에서 사진도 남기고 금강산 관광을 할 때 넘어 다녔다는 임진강 독개다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만 고향을 보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고 이곳에는 미국과 일본,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 방문객으로 찾아왔습니다.
파주에서 유명하다는 벽초지 수목원도 찾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천안 독립기념관도 찾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랜동안 사람들이 집에만 있다가 이제는 모임도 할 수 있으니 가는 곳마다 사람 천지입니다. 그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가을의 한 끝자락을 붙잡고 고향을 이어 갔습니다. 비록 북한은 미사일을 날려가면서 한국을 위협하지만 고향이 바라보이는 비무장 지대에서 우리는 평화의 꿈을 꾸었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