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새벽미명과 엄마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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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일찍 출근하는 아들을 위해 일어나서 새벽밥을 지어서 출근시키니 창 너머로 먼동이 터오는 아침입니다. 그럴때면 저도 모르게 입가에 흥얼거려지는 노래 소리가 있습니다.

먼동이 터오는 이른 새벽에 간절한 소원 안고 길을 쓰네

“이 세상 끝까지”라는 영화에서 태성이 할머니가 동트는 이른 새벽 김일성이 지나갈 길을 깨끗하게 쓸어가는 내용으로 제작된 북한 예술영화 주제곡입니다.

북한에선 일찍 일어나서 유화사진이며 동상들을 쓸고 닦고 해야 했는데 여기서는 일찍 일어나서 가족을 위해 아침 밥을 해주고 반찬을 만들고 모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시간을 씁니다.

직원이 많거나 거리가 먼 회사에서는 아침저녁으로 회사에서 통근차량이 다니는데 아들은

집 가까운 곳에 회사에 다니는지라 정류장마다 들려서 다니는 버스가 좀 늦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역순환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퇴근을 합니다. 가끔 너무 늦어지거나 눈 비오는 날이면 저나 남편이 회사까지 자가용으로 태워줍니다. 아들에게도 자기 차가 있었는데 군에 있는 기간 보험료가 들어간다고 팔아서 지금은 버스를 타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랍니다.

25살, 북한이라면 한창 일할 나이지만 한국에서의 25살은 아직 잔뼈도 굵지 않은 애기라고 합니다. 25살 나이에 남편은 아이 아빠가 되어서 가정을 꾸렸고, 저는 아버지를 살리려고 두만강에 몸을 실은 나이입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 25살이면 그런 책임감을 기대하기에는 멀었군요.

북한에서 살때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친구 오빠를 우리집 황소라고 하면서 밥그릇이 넘치게 밥을 담아주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남자들은 힘쓰는 일을 하니깐 밥그릇도 넘치게 주고 대접을 받는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 생각을 하고 내 아들을 보니 눈이 감기고 아직도 애기 같아서 언제 철들고 장가를 갈까 한숨이 나옵니다. 친구들하고 자식들 이야기를 하면 모두 답답해하면서 자기들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한다네요. 부모 입장에서 들으면 복장 터지는 소리랍니다. 근데 어쩌면 우리도 부모 성에 안차고 부모님이 한소리 하면 그렇게 투덜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런 자식이 매일 저녁마다 먹는 라면이 지겹다해서 또 도시락을 싸줍니다. 북한에서도 기숙사에서는 밥을 해주지만 한국은 기숙사 생활이 아니어도 회사는 점심을 제공하고 잔업이 있을 경우는 저녁식사도 제공을 합니다.

식사를 제공할 수 없는 환경이면 밥값이 따로 나오죠. 그래서 주방에서 밥해주는 사람이 없는 야간에는 집에서 라면과 햇반이라고 부르는 진공상태로 포장된 밥을 사서는 직장에서 데워 먹는데 한 달만에 질린다고 도시락을 먹고 싶다네요. 저도 엄마라 어쩔수 없이 도시락을 사서 밥을 싸줍니다.

그러고보니 한국에 갓 입국해서 주유소에서 일하는데 모두 식당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는데 같은 탈북자 출신하고 저만 유독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도시락을 들고 다녔지요.

사장님이 점심을 도시락 싸들고 오는 저와 탈북민 친구에게 밥값을 하라고 10만원씩 미화로 하면 80달러 정도 따로 챙겨 주었고 주유소 다니는 몇년 간을 그렇게 밥을 들고 다녔답니다.

그때마다 같이 일하는 한국태생들은 힘들게 밥을 싸가지고 다니냐고 했지만 저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을 행복하다고 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 강냉이 밥에 된장을 한쪽 귀퉁이에 얹거나 아니면 김치를 담고 또 생활이 좀 괜찮으면 감자반찬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다닐 때 4교시 끝나면 도시락을 난로에 올려놓는데 밥이 덥혀지면서 밥이 익어서 누룽지가 되는 냄새가 김치 익어가는 냄새와 함께 어우려져 코를 찌르죠. 그러면 아이들의 허기진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고 군침을 삼키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집중이 안되던 추억까지도 생각이 나서 이야기 하곤 했습니다.

농촌에 집단진출로 나갔을 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야 하는 친구들이 쌀이 부족해서 시래기를 넣은 볶음밥을 해서 담아오기도 했지요. 다 큰 처녀들이라 그런 도시락을 꺼내면서 부끄러워하던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던 그런 추억은 북한 뿐만 아니라 한국도 있답니다. 괴나리봇짐을 해가지고 그 안에 도시락을 넣고 다녔다고 추억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살았던 70~80년대와 많은 공통점을 찾아볼 수가 있답니다. 당시는 어쩌면 한국이 북한보다 생활이 썩 나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대한민국이 지금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런 대한민국을 만드는데에는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여러 대통령의 노력과 국민들의 수고가 깃들어 있겠죠. 그리고 한국의 첨단기술 수준은 세계 강국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한민국이 있기에 탈북민 우리가 찾아올 나라가 있었다고 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 하고 있습니다.

새벽이면 늘 먼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꼭꼭 눌러 담는 아들의 도시락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얹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