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김장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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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요즘 한국은 김장하는 집이 많습니다. 빠른 가정에서는 벌써 김장을 끝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올해는 추위가 늦게 찾아온다고 기상청에서 예보를 하기에 김장을 서두르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해마다 지역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하나센터에서도 김장행사를 하고 또 다른 단체들에서도 김장을 해서는 탈북민들에게 나누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감감하네요.

한국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중에는 김장을 담그는 날 돼지수육을 삶아놓고 갓 버무린 김치 한쪼박에 돼지고기 한점을 얹어서 먹는 것 입니다. 물론 고기를 안 먹는 저에게는 해당이 안되지만 가족을 위해 돼지고기를 5근정도 사서는 삶습니다. 비린내를 잡아주는 맛술도 넣고 월계수이파리도 두 세잎 넣어주고, 거기에 된장을 한 숟가락 뚝 떼서 풀어주고 삶으면 돼지 냄새도 사라지고 구수한 맛이 풍기죠.

올해는 함경도 지방에서 유명한 영채도 주문을 했습니다. 탈북민들이 북한이 바라보이는 한국에서 제일 추위가 있는 지역에 영채를 심고 키워서 판매를 하기에 10kg을 주문해서 노랗게 잘 띄워서 돼지감자와 무를 중간 중간에 넣어서 만들면 맛있는 영채김치가 되겠죠.

영채김치보다 무가 맛있는데 영채 속에 있는 돼지감자는 무보다도 더 맛있답니다. 돼지감자라 하면 가끔가다 북한에서 뿔루깨라고 부르던 커다란 무처럼 생긴 것을 쪄먹던 생각이 드는군요. 또 백설희라는 농업박사가 연구해서 농장에 심었던 기름골도 있었지요. 물론 겨울에 서리와 눈이 일찍 내리는 바람에 기름골이 얼어서 미처 수확도 못하고, 그해 겨울을 나는 쥐들만 기름골을 걷어들이면서 풍년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오빠들 뒤를 따라다니며 쥐굴을 파서 기름골을 주어들이던 추억도 아스라하니 떠오르네요. 그런데 돼지감자는 기름골보다는 크고, 아무곳에서나 잘 자라고, 수확도 또한 빠르답니다. 해바라기처럼 대가 높게 자라죠.

한국은 11월 말경이면 도루묵인 은어도 한창 제철입니다. 북한에서도 도루묵을 많이 먹던 기억이 나는군요. 도루묵은 톡톡 튀는 알이 정말 맛이 있죠. 그 알을 낳는다고 이맘때면 도루묵이 바닷기슭으로 떼를 지어 몰려듭니다.

그런 은어에게는 재미난 유래가 있는데요. 임진왜란때 임금인 선조가 피난을 가다가 급하게 떠나면서 먹을 것이 없기에 누군가가 진상한 생선요리 맛을 보고 너무 맛있어서 이 고기 이름이 무엇이냐고 하니 신하들이 “묵”이라고 답했습니다. 선조는 천하일미 물고기에 “묵”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은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줬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궁으로 돌아온 선조는 고된 피란 때 맛있게 먹었던 물고기 맛이 생각이 나서 찾았고, 그 물고기를 먹었더니 그때의 맛이 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실망하여 도로 “묵”이라고 하여라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묵은 은어에서 “도로 묵”이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올해는 그런 도루묵을 일찌감치 부두에서 배에서 내릴 때 싼 가격에 사서 식해도 담가 먹을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에서는 명태식해보다는 가자미식해를 더 선호를 하는데 제가 살던 함경도 지방은 가자미식혜보다는 명태식해를 더 일러줬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냉동으로 되어있는 명태도 한짝을 사서 명태깍두기도 담구고, 손바닥만큼 작은 가자미는 가격도 싸니 구매해서 가자미 식혜와 은어식혜 또 젓갈도 담구고, 다양한 김장준비를 계획하고 있지요.

북한에서 이런 준비를 하려면 엄청 잘 살거나 권력의 힘이라도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일년 김장을 요란스레 한다고 해서 가정생활이 바닥이 날 정도는 아니랍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살 때에는 100kg짜리 커다란 독에 일인 1독씩 김치를 담갔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처럼 김치가 주 반찬이 아니다보니 식구가 많은 집이라야 절여서 50kg을 담는다고 해도 엄청 많다고들 합니다. 절인 배추 20kg이라고 해도 배추 7포기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렇게 담가도 일년을 먹고도 남는 수량이 됩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 사람들이 사서 먹는 것을 선호하지만 이젠 중장년 나이에 들면 가족에게 하나라도 정성이 들인 것으로 먹이고 싶은 마음에 김장을 직접 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과며 배를 넣고, 또 황태를 우린 물까지 곁들어서 김치소박이를 넘치게 해 넣어도 북한에서 먹던 그 김치 맛이 나지 않습니다.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추운 겨울 날씨에 땅속의 온도에서 만들어내는 김치의 그 짜릿한 맛을 한국에서는 절대 나올 수가 없네요. 김치 움에서 갓 꺼내 온 김치에서 풍기는 냄새와 찡한 맛은 세계 어디서도 못 낼 맛입니다.

북한에서 땅속에 김치 움을 만들어서 김장을 했다면 한국은 김치냉장고가 있습니다. 온도를 김치 숙성온도에 맞게 설정을 해놓으면 김치가 익어가고, 너무 익는다 싶으면 맛지킴으로 설정을 할 수도 있고, 살얼음도 끼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의 김치 맛이 생각이 나서 가끔은 살얼음이 지게 해놓고 김치를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북한에서 살아가던 추억을 잊지 못해서 오늘도 북한에서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 맛을 찾아갑니다.아마도 그것이 고향의 맛인가 봅니다.

많은 실향민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의 맛, 그리고 탈북민 우리가 그리는 어머니의 손맛을 이제는 우리가 어머니가 되어서 만들어갑니다. 김장김치를 위해 준비하는 이 날들이 고향의 어머니의 맛으로 연결이 되는 추억이 깃든 시간들입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