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친절한 관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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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한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인 것 같은데 어느덧 달력 한장도 채 안남긴 12월이 되어 날씨가 겨울입니다. 얼마전 서울은 첫 눈이 내렸다고 하네요. 제가 사는 경상남도는 한겨울에도 눈을 보기 어렵습니다. 15년전, 제가 처음 한국에 온 해에는 12월에 아파트 담장에 장미꽃이 만발해서 어머나, 한국은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하더니 한겨울에도 장미꽃이 피어나네 하고 놀라서 감탄을 했었답니다.

예전에 6.25당시 포로가 되어서 거제포로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휴전이 되면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신 친구 아버지가 거제도에는 한겨울에도 얼음이 엄지손가락 두께밖에 안된다고 하시면서 따뜻한 한국 겨울이 그립다고 하시던 말씀도 새삼 다시 생각이 나는군요. 그래도 가끔은 북한에서 허리까지 내린 눈 속을 헤집으면서 장난을 치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지금 북한은 엄동설한일 텐데 말이죠.

하룻밤을 자고나면 밤새 내린 눈이 쌓여서 문을 열수도 없고 또 먹을 것이 다 눈에 파묻혀서 먹이를 찾는 참새를 잡느라고 놓던 참새 덫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면서 이 추운 날 내 형제는 어떻게 겨울을 날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겨울은 북한에 비하면 추위라고 말을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느끼는 체감온도는 어린 시절 북한에서 뛰어놀던 그때의 추위보다 더 추운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추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얼마전 제가 사는 지역의 동사무소에 볼 일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예전에는 동사무소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명칭을 행정복지센터로 바꿨습니다. 이곳에서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등록되어 있는 주민등록증이며 기본증명서 그리고 우리가 탈북민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북한이탈증명서라는 것도 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서류들은 취업을 비롯하여 각종 사유들로 인하여 공공기관이나 회사에서 요구를 하면 제출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집을 이사를 해도, 아기가 출생을 해도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을 하면 바로 등록이 가능합니다.

북한은 집을 이사하거나 아이가 출생 하면 예전 명칭으로는 안전부, 현재는 보안서에 가서 등록을 했어야 했지요. 심지어 이름에도 관여를 했는데 나름 항열을 따져가면서 의미가 있게 지은 이름인데 안전원이 들어보고 이름이 혁명적이지 않다고 바꾸라고 해서 충성이를 비롯한 혁명적인 이름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도 북한에서 받침이 없는 이름들은 모두 남한식이라고 혁명적인 이름으로 바꾸라고 했다고 했지요. 저희가 북한에서 살 때에도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의 아내 이름이 이순자라고 해서 여자들 이름에서 끝에 “자”자 돌림을 모두 바꾸게 했지요. 이렇게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이름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한국은 동사무소에 가면 공무원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일처리를 도와줍니다. 만약 불성실하고 친절하지 않으면 민원을 넣는 경우가 있기에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이오만하게 행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답니다. 북한에서 보안서에 맞먹는 경찰서 또한 탈북민들에게는 아주 친근한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생활을 하는 동안 탈북민들의 신변안전을 보살펴주는 경찰서 보안계 형사들과 자주 대면하게 되고 또 각 지역의 경찰서들에서는 명절이면 위로선물도 자주 해주기에 법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취업에 어려움이 생기면 경찰서를 찾아가서 고민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에는 병원이나 상점에서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잘해주는 줄 알았는데 공공기관들조차 친절을 중요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지요. 예전엔 막연하게 공공기관은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공공기관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곳이라고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한국에서 살면서 처음에는 탈북민들이 친절과 봉사를 잘못 이해하고 공공기관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저 역시 관공서들에서 탈북민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아무렇게나 막 대한다고 생각하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답니다. 예를 들어 법에 따라 일을 진행하다 보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때면 전후좌우 살피지 않고 화부터 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탈북민들 뿐만이 아니죠. 심야에는 술을 마신 취객들 때문에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경관들이 골머리를 앓습니다. 한 번씩 그런 고충을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북한을 떠올리죠. 만약 북한이라면 저 사람들이 저리 술주정을 해도 무사할까? 하고 말이죠. 북한에서는 보안서에서 보안원들이 나와서 집집마다 가택수색을 하고 술을 빚는 집들 찾아내고 술독을 깨고 난장판을 만들어도 주민들이 반항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런 북한과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술을 빚는 것이 북한당국이 허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안원들의 폭력이 과연 정당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을까 싶군요.

얼마 전 지역의 담당 형사님한테서 커피숍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교환권을 선물로 받았습니다.그동안 저를 위해 신변보호를 해주고 또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개인적으로 심신이 힘들어 한다고 이렇게 위로 차 선물을 보내주네요. 권력이 봉사를 하는 사회, 권력이 낮아지는 관계는 사회가 성숙되어 야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남한에 살면서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진행 김태희, 에디터 이진서, 웹팀 김상일